80년대 이후 나타났던 미국발 금융 위기 가운데 이번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히는 것은 86년 미국 저축대부조합 사태와 98년 LTCM(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 사태다.

86년 미국 저축대부조합은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로 파산했고, LTCM은 과도한 차입투자(레버리지)를 했다가 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파산을 맞은 바 있다.

CJ투자증권은 13일 이 가운데 98년 LTCM 사태가 최근의 서브프라임부실 사태와 유사한 점이 많다며 두 사례를 비교 분석했다.

대출 부실화의 문제가 헤지펀드 파산 리스크를 자극하고, 그에 따른 투자은행 부실화 가능성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BNP 파리바은행의 펀드 환매 중단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등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은 최근 긴급자금 집행에 나선 상황이다.

이와 관련, 김승한 CJ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LTCM 사태 때처럼 중앙은행들이 자금집행에 나서고 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의견이다.

개별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이 아니라 단기금리 급등이라는 자금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이라는 것.

일각에서는 헤지펀드의 신용 파생상품이 초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문제라는 점을 들어 이번 사태가 LTCM 사태와 유사한 상황 전개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 애널리스트는 이번 상황의 핵심은 헤지펀드 파산 여부가 아니라 ‘서브프라임 위기가 엔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것) 청산으로 이어질 것인지의 여부’라고 주장했다.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은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된다는 의미다.

김 애널리스트는 과거 LTCM의 파산 당시 신용경색이 확산되며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급등,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을 가속시킨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최근 상황은 LTCM 발생 당시와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

98년 LTCM 사태 당시에는 아시아의 외환위기와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 등 신흥국가들의 금융시장이 불안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기 호황 속에 신흥시장 주요국들의 외환보유고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금융시스템이 건전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 등 신흥시장 내 주요 국가를 비롯해 미국 이외 지역은 안정적인 성장 국면인 것도 98년과 다르다고 봤다.

김 애널리스트는 또한 장기적으로 ‘미국의 실물 경기 모멘텀이 약화될 것인가의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경기 회복이 더딜 경우 시장의 미래 기대수익률이 하락하는데, 이 경우 헤지펀드에 대한 환매압력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

동시에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달러화 약세 유발요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최근 미국 7월 경기 낙관지수의 반락과 헤지펀드발 불확실성 리스크는 경계해야겠지만, 하반기 증시 회복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아직은 헤지펀드 위기가 투자은행 전반의 부실이나 실물경제 타격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미국 제조업체의 이익 성장과 미국 이외 지역의 경기 호조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미국 실물 경제로 파급되는 것을 완화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연일 상승세인 BDI(벌크선 운임지수) 추이는 여전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호조를 시사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신흥시장펀드의 투자 매력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엔 캐리의 핵심 요인이 여전히 일본의 낮은 금리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엔캐리 트레이드의 급격한 청산 우려는 높지 않다는 의견이다.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