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그가 FRB의장에 취임한 작년 2월 미 언론들은 그의 별명을 '헬리콥터 벤'이라고 소개했다.

FRB이사 시절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때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근거에서다.

여기에는 '마에스트로(거장)'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공백을 과연 메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깔려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FRB의장으로 재임한 1년6개월 동안 버냉키 의장은 이런 이미지를 바꾸는 데 훌륭히 성공했다.

작년 8월 이후 기준 금리 인상행진을 중단한 뒤 시장이 금리인하를 시사만이라도 해달라며 그의 입을 목빠지게 쳐다볼 때도 그는 "미 경제는 탄탄하다"만을 외쳐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시장의 동요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인 지난 7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통화정책의 중점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억제"라고 못을 박았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버냉키 의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FOMC의 금리동결 결정이 있은 이틀 후인 지난 9일 서브프라임 파문은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산됐다.

일부에서는 "FOMC판단이 틀렸다"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고 투덜댄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태도가 고집스런 인플레이션 파이터만은 아니었다.

지난 2월 서브프라임 파문이 터졌을 때 "서브프라임 파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발언은 "주택경기침체가 예상 외로 길어져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5%포인트 가량 하향 조정한다"(지난 7월 의회증언에서)로 바뀌었다.

지난 9일과 10일에는 9·11테러 이후 가장 많은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부에서는 그린스펀 전 의장이 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금리를 내려 위기를 진정시킨 '그린스펀 풋(put)'을 들먹이며 '버냉키 풋'이 행사될 때가 됐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그의 몫이지만 결정의 내용은 한동안 버냉키 의장의 평판을 좌우할 것이 분명한 듯하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