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혜국 스님 누구인가 ‥ 손가락 3개 태워 성불다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의 죽비는 이번 하안거에도 어김없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금봉선원에서 수행 중인 스님과 신자들의 '화두공부'를 점검하면서 생긴 결과다.
특히 신자들에게는 매주 한 차례씩 문답식의 소참법문을 통해 선의 기초부터 공부의 진척 과정까지 소상히 일러주지만 공부를 점검받으러 온 사람이 답을 못하거나 틀린 답을 내놓을 땐 사정없는 죽비 경책이 돌아간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해인사로 출가한 혜국 스님은 삶 전체가 치열한 구도 과정이었다.
출가 후 경전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성철 스님에게 "참선보다는 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가 무지막지한 죽비세례를 받고 참선의 길로 들어섰다.
은사인 일타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기필코 성불하겠다는 뜻으로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불태워 공양한 그는 태백산 도솔암에서 솔잎과 쌀가루로 생식하며 2년7개월간 장좌불와했다.
그 수행 과정이 어디 쉽겠는가.
잠을 쫓기 위해 천장에 밧줄을 매고 목에 건 채 수행하기도 했고,물을 담은 쇠발우를 머리에 이고 정진하기도 했다.
그래서 혜국 스님은 "구도의 뜨거운 눈물로 무릎을 세 번은 적셔봐야 수행의 참맛을 안다"며 공부하는 이들을 다그친다.
부산 홍제사,제주 남국선원에 이어 석종사를 창건한 것은 출가·재가자가 함께 공부하는 도량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혜국 스님은 또한 간화선 대중화에도 앞장서 조계종 선원장들이 함께 펴낸 수행지침서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의 편찬을 주도했고 대중 법회를 통해서도 간화선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참선이야말로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이요,정신의 보물창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금봉선원에서 수행 중인 스님과 신자들의 '화두공부'를 점검하면서 생긴 결과다.
특히 신자들에게는 매주 한 차례씩 문답식의 소참법문을 통해 선의 기초부터 공부의 진척 과정까지 소상히 일러주지만 공부를 점검받으러 온 사람이 답을 못하거나 틀린 답을 내놓을 땐 사정없는 죽비 경책이 돌아간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해인사로 출가한 혜국 스님은 삶 전체가 치열한 구도 과정이었다.
출가 후 경전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성철 스님에게 "참선보다는 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가 무지막지한 죽비세례를 받고 참선의 길로 들어섰다.
은사인 일타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기필코 성불하겠다는 뜻으로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불태워 공양한 그는 태백산 도솔암에서 솔잎과 쌀가루로 생식하며 2년7개월간 장좌불와했다.
그 수행 과정이 어디 쉽겠는가.
잠을 쫓기 위해 천장에 밧줄을 매고 목에 건 채 수행하기도 했고,물을 담은 쇠발우를 머리에 이고 정진하기도 했다.
그래서 혜국 스님은 "구도의 뜨거운 눈물로 무릎을 세 번은 적셔봐야 수행의 참맛을 안다"며 공부하는 이들을 다그친다.
부산 홍제사,제주 남국선원에 이어 석종사를 창건한 것은 출가·재가자가 함께 공부하는 도량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혜국 스님은 또한 간화선 대중화에도 앞장서 조계종 선원장들이 함께 펴낸 수행지침서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의 편찬을 주도했고 대중 법회를 통해서도 간화선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참선이야말로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이요,정신의 보물창고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