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이는 퍼스트 레이디.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너무 죽어서도 안 되는 '기묘한 운명'의 청와대 여주인들.

이들은 최고 통치자의 반려이자 고독한 권력자의 대화 상대로서 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때로는 권부의 '장막'과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여론 전달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국민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산다.

초대 퍼스트 레이디였던 프란체스카 여사에서 이희호 여사에 이르기까지 8명의 대통령 부인 얘기를 담은 '한국의 퍼스트 레이디'(조은희 지음,황금가지)가 출간됐다.


이 책은 그들의 성장 환경과 결혼,가정생활과 자녀 교육 등을 살펴보고 최고 공직자인 남편을 보좌하면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명했다.

저자는 신문사 기자와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영부인들의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최근 1년 6개월 동안에도 영부인들의 자취를 추적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양아들 이강석씨의 권총 자살,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이사한 날 등을 직접 기록한 프란체스카 여사의 영문 메모를 발굴해 이 책에 실었다.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 전날 처음 해본 퍼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머리를 6번이나 감았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영부인들의 삶은 현대사의 격랑과 얽히기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으로 얼룩져 있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신학자인 공덕귀 여사는 전문성과 능력을 갖췄지만 내각제하의 윤보선 대통령으로 인해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그녀는 요리에 필요한 새우의 수와 청와대 화장실의 수건 치수까지 정해주는 남편의 간섭 때문에 속을 썩였다.

최규하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는 소박하고 수수한 '이웃집 할머니'형이었다.

이순자 여사는 '너무 나선다'는 세간의 평과 달리 중학생 때 만난 첫사랑과의 결혼을 위해 학업을 포기할 정도로 '순진'한 면도 지녔다.

이에 비해 '너무 조용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김옥숙 여사는 '물태우'라는 별명을 가장 먼저 대통령에게 전했다.

이희호 여사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저자는 "대통령의 제1참모인 영부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이중적"이라며 "영부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자와 배우자를 함께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00쪽,1만2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