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6만여 개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 조례·규칙에 대해 일제 조사에 나선 것은 유권자들의 '표'를 먹고 사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지역이기주의 차원에서 효율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자치법규로 경쟁을 무리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역 중소 상인들의 압력을 못 이겨 줄줄이 생겨난 대형마트 출점 규제가 대표적이다.

지역 재래시장과 구멍가게 등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형마트의 발목을 잡는 방식의 규제는 중소상인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대형마트 출점 규제 어느 정도기에

대전시는 지난해 준주거지역에 들어설 수 있는 소매점과 상점을 연면적 3000㎡ 미만으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업계는 사실상 출점을 금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가 대전에 확보해 놓은 점포 부지가 모두 준주거지역에 있고 영업면적이 3000㎡ 미만이면 효율성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자원부에서 대형마트를 분류하는 기준 역시 3000㎡ 이상이다.

청주 여수 부천 영주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해 대형마트 출점을 사실상 제한했다.

대구광역시에 점포를 내려던 이마트는 교통영향평가 때문에 출점을 포기했다.

대구시가 조례를 개정해 교통영향평가 때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교통유발계수를 5.46에서 8.19로 50%가량 올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마트가 점포를 낼 경우 매년 내야 하는 교통유발부담금이 수십억원 더 늘어 수지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충청북도와 대구 남구청 등은 조례나 규칙도 아닌 지자체장의 업무 지침으로 대형마트 출점을 가로막고 있는 케이스다.


◆공정위 어떻게 손보나

대형마트 개설은 현행법상 등록제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 업체들이 신규로 점포를 여는 것 자체를 제도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도시계획조례로 제한하거나 건축심의와 교통영향평가 등의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간접 규제를 동원하고 있다.

공정위는 자치법규를 통한 이 같은 간접 규제가 경쟁을 제한한다면 자치단체에 직접 시정을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규제로 인한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는 경우는 예외다.

강재영 공정위 제도법무팀장은 "중소 유통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고 덩치가 큰 업체의 진출을 막아서 상인들을 보호하는 것은 오히려 유통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시정 권고는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쟁제한적인 법령 및 행정처분에 대한 협의·조정권'에 근거한다.

너무 포괄적인 권한이어서 기속력은 없지만 이를 따르지 않을 땐 행정자치부 산자부 등 다른 부처와 협조해 반드시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텃세' 조장하는 자치법규도 조사

유통 분야 외에도 공정위는 특정 업종에 새로 진출하려는 회사에 해당 지역 사업자단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등 지역이기주의에 기초한 텃세를 용인하는 내용의 조례·규칙도 일제히 찾아내 손본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어 건설산업기본법상 배수설비공사는 일반 건설업자의 참여가 가능한데도 각각의 지역 단위로 영업하는 것이 보통인 '상·하수도 설비업자'로 참여 범위를 제한해 지역민들에게 특혜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강 팀장은 "지자체가 청소 분뇨처리 등 공공서비스를 외주할 때 지자체장 또는 지방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업자를 우대하기 위해 법령에 근거 없는 요건을 만들어 경쟁을 제한하고 있는지도 철저히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