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목 사야 되나요','언제쯤 조정이 올까요','펀드 하나 추천해 주세요.'

삼성증권 청담지점 박재용 지점장은 요즘 고객에게서 듣는 말을 이 세 가지로 요약했다.

질문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고 싶어하고 진입 시기를 저울질해 보려는 조바심이 잘 드러난다.

"현금을 보유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주식 상품에 대한 투자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안전한 예금이나 채권에 머물러 있던 돈이 증시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점이 '한국 증시 2000 돌파'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팀장은 "2004년 하반기 이후 예금 금리가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부동산시장도 상투를 쳤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부동산과 은행에 머물던 가계자산이 증시로 대이동하는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식·펀드 투자액 2년 만에 2.7배

가계금융자산은 증시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2004년 무렵부터 급속하게 주식 관련 상품으로 이동 중이다.

가계 보유 금융자산에서 주식과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말 13.9%에 불과했지만 올 3월엔 26.1%로 거의 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금액으로 계산해 보면 빠른 변화 속도를 더 잘 감지할 수 있다.

3월 말 기준 가계 금융자산총액은 1542조원이고,이 중 주식·펀드 등의 투자자산 규모는 402조4600억원이다.

이는 불과 2년여 전인 2004년 말 149조8000억원의 2.7배에 달하는 것이다.

특히 주식 투자 비중이 통상 90% 이상인 주식형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 주식형펀드로 들어온 자금은 23조원에 달한다.

반면 은행권의 예금 상품에서는 7조원 정도의 적지 않은 돈이 빠져나갔다.

채권형 펀드수탁액도 4조원가량이 줄어들어 주식형펀드가 독주 태세를 굳히는 모양새다.

분석 기간을 길게 잡아도 결과는 비슷하다.

2002년만 해도 개인 금융자산 가운데 15.4%를 차지했던 주식 비중은 작년 말 19.6%까지 올라갔다.

특히 주식형펀드는 2004년 이후 3년6개월여 동안 62조원에 달하는 돈이 유입돼 같은 기간 예금 증가액(31조원)의 2배에 달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이후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43% 증가했지만,주식·펀드 투자규모는 169%나 급증했다.

반면 예금·현금 증가율은 16%로 부진했다.

펀드 투자뿐만 아니라 직접 투자도 크게 늘어 올 들어 새로 생긴 활동계좌(6개월 내 한 번 이상 거래된 계좌) 수가 147만5000개에 달하고 있다.


2004년 말 663만9000개이던 전체 활동계좌 수는 지금은 989만2000개로 49% 급증,1000만개 돌파를 앞두고 있다.

◆증시,선진국형으로 변신 중

주식이나 펀드 투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 개인들의 경우 펀드와 주식에 투자한 자금이 전체 운용자금의 45.1%(2006년 3월 말 기준)로 한국 가계의 예금·현금(45.3%) 비중과 거의 비슷하다.

반면 미국의 예금·현금 비중은 13.3%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갈길은 멀지만 밀려드는 돈의 힘이 워낙 막강하다보니 한국 증시는 빠른 속도로 선진국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만성적인 저평가 현상을 탈피한 데서도 예전과 확 달라진 증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조사회사인 IBES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PER(주가수익비율)는 13.6배로 프랑스(13.2배)나 영국(12.8배),오스트리아(12.6배),이탈리아(12.5배) 등 유럽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하던 '가벼운' 증시에서 웬만한 악재에는 끄떡하지 않는 '듬직한' 시장으로 탈바꿈한 점도 눈에 띈다.

중국의 금리 인상 소식이나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부실 등 굵직한 악재도 반나절 조정으로 마감하고 상승반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코스피지수의 일일변동성은 올 들어 0.97%로 사상 처음으로 1% 이하로 떨어졌다.

2000년의 변동성 2.86%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임정석 NH투자증권 팀장은 "고질적으로 증시를 괴롭혀 왔던 지정학적 불안감이나 불투명한 회계 관행,주주경시 풍조 등은 거의 사라졌다"며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를 마감하고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유할 수 있는 황금기가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광엽/박해영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