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1월11일,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은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현대양행을 통한 중공업 왕국 실현의 꿈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지난 20일 1주기 추모행사에 맞춰 출간된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재계의 부도옹 雲谷(운곡) 정인영'(한국경제신문사 발행)에는 신군부의 발전설비통합정책에 따라 주력사인 현대양행을 넘길 당시 고인이 느꼈던 비통함과 억울함이 배어 있다.

그는 "국보위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신군부는 80년도에 중화학공업 투자 조정에 대해서도 초법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며 "보이지 않는 강력한 세력에 의해 현대양행 경영권 장악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경영권 장악의 첫 번째 징후는 차입금의 출자전환이었다.

그는 "80년 7월4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이 220억원의 차입금을 현대양행의 출자금으로 전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로 인해 (나의) 현대양행 출자분은 42%로 줄어들었다"고 회고했다.

현대양행 경영권 장악 시나리오는 이후 중화학공업 투자조정방안 발표(8월20일)로 절정을 이루다가 현대양행의 공기업화(11월11일)로 마무리됐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정당한 자산평가절차에 의해 산정된 현대양행 창원공장의 정산금 643억원을 한국중공업 측에 요청하자 이른바 '괘씸죄'에 걸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결국 외압에 못이겨 정산을 포기하지만 뚜렷한 설명도 없이 신군부 측은 오히려 66억원을 변제하라는 통보를 해왔다고 기록했다.

은행권 차입금의 출자전환은 당시 언론통제로 크게 보도되지 않았으며 창원공장 정산금 643억원 청구와 66억원 변제 등은 이번에 자서전을 통해 처음 알려진 사실들이다.

고인은 뇌졸중 투병 등 온갖 시련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를 모색했던 '재계의 부도옹(不倒翁)'답게 "나를 지켜준 것은 '9할이 역경'이었다.

숱한 역경과 고비를 낙관주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