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ㆍ주식 열풍 근대조선 때 더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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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데 한평생이 걸린다.
어떻게 죽는 것이 옳은지를 배우는 데도 한평생이 걸린다.' 로마의 세네카가 한 말이다.
거창한 '철학' 말고 요즘 세태로 말하자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우는 데도 일생이 걸린다.
국문학도 출신의 인문학자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39)는 신작 '럭키경성'(살림)에서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 10개를 들려준다.
지난해 펴낸 '경성기담'의 속편.
그는 근대 조선인들이 자본주의 '돈맛'을 본 첫 세대답게 '한편으로는 돈을 저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히 욕망했다'고 얘기한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주도한 작가 김기진은 정어리 기름이 각광받는 것을 보고 청진에 어유 공장을 차렸다가 일본의 긴축으로 어유 값이 폭락해 낭패를 봤고 금광에도 손을 댔다가 실패했다.
그 뒤 5년 동안은 주식에만 매달렸다.
날마다 '명치정(명동)에 있는 주식취인소(증권거래소)에 나가 앉아서' 일확천금의 꿈을 꿨다.
특이하게도 그는 5년 동안 동신주(東新株) 한 종목만 사고 팔았는데 한때 15배의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했지만 결국 깡통 신세를 면치 못했다.
오산학교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도 러일전쟁 때 가죽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고 닥치는 대로 가죽을 사 모았으나 전쟁이 금방 끝나 알거지가 됐고 옥수수·명태 매점매석에 나섰다가 또 쓴맛을 봤다.
부동산 투기 열풍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1932년 8월23일,지린-회령을 연결하는 일본의 대륙철도 길회선 종단역이 나진으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나자 인구 100명 남짓한 나진에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땅값이 하루 아침에 1000배로 뛰고 투기꾼이 몰아닥쳤다.
이 시절 실업가 김기덕은 총독부 발표 이전에 이 일대 황무지 12만평을 매입해 놓았다가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의 투기 열풍과 그 기막힌 사연들을 인물 중심으로 조명하면서 '당시 조선인들은 '돈'에 비길 만큼 강렬한 욕망인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고 그 거세당한 권력의 빈자리를 파고든 게 바로 돈을 향한 열망'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상적인 부자의 모델도 제시한다.
31번 실패하고 32번 일어선 사업가 이종만.그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공동체 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사재를 출연해 대동농촌사,대동공업전문학교 등 '대동콘체른'을 만들었고 '공부'(公富: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부호)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됐다.
평생 수절 과부로 살면서 '먹기 싫은 것 먹고,입기 싫은 옷 입고,하기 싫은 일 하고'의 신조로 악착같이 모은 재산을 전부 교육사업에 쏟아부은 여성실업가 백선행의 '아름다운 정신'도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344쪽,1만2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어떻게 죽는 것이 옳은지를 배우는 데도 한평생이 걸린다.' 로마의 세네카가 한 말이다.
거창한 '철학' 말고 요즘 세태로 말하자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우는 데도 일생이 걸린다.
국문학도 출신의 인문학자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39)는 신작 '럭키경성'(살림)에서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 10개를 들려준다.
지난해 펴낸 '경성기담'의 속편.
그는 근대 조선인들이 자본주의 '돈맛'을 본 첫 세대답게 '한편으로는 돈을 저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히 욕망했다'고 얘기한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주도한 작가 김기진은 정어리 기름이 각광받는 것을 보고 청진에 어유 공장을 차렸다가 일본의 긴축으로 어유 값이 폭락해 낭패를 봤고 금광에도 손을 댔다가 실패했다.
그 뒤 5년 동안은 주식에만 매달렸다.
날마다 '명치정(명동)에 있는 주식취인소(증권거래소)에 나가 앉아서' 일확천금의 꿈을 꿨다.
특이하게도 그는 5년 동안 동신주(東新株) 한 종목만 사고 팔았는데 한때 15배의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했지만 결국 깡통 신세를 면치 못했다.
오산학교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도 러일전쟁 때 가죽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고 닥치는 대로 가죽을 사 모았으나 전쟁이 금방 끝나 알거지가 됐고 옥수수·명태 매점매석에 나섰다가 또 쓴맛을 봤다.
부동산 투기 열풍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1932년 8월23일,지린-회령을 연결하는 일본의 대륙철도 길회선 종단역이 나진으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나자 인구 100명 남짓한 나진에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땅값이 하루 아침에 1000배로 뛰고 투기꾼이 몰아닥쳤다.
이 시절 실업가 김기덕은 총독부 발표 이전에 이 일대 황무지 12만평을 매입해 놓았다가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의 투기 열풍과 그 기막힌 사연들을 인물 중심으로 조명하면서 '당시 조선인들은 '돈'에 비길 만큼 강렬한 욕망인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고 그 거세당한 권력의 빈자리를 파고든 게 바로 돈을 향한 열망'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상적인 부자의 모델도 제시한다.
31번 실패하고 32번 일어선 사업가 이종만.그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공동체 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사재를 출연해 대동농촌사,대동공업전문학교 등 '대동콘체른'을 만들었고 '공부'(公富: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부호)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됐다.
평생 수절 과부로 살면서 '먹기 싫은 것 먹고,입기 싫은 옷 입고,하기 싫은 일 하고'의 신조로 악착같이 모은 재산을 전부 교육사업에 쏟아부은 여성실업가 백선행의 '아름다운 정신'도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344쪽,1만2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