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 4월 시가 9억원 상당인 강남 대치동의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자금은 자신이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점을 활용해 은행에서 사업자금 명목으로 7억원을 대출받아 마련했다.

편법으로 대출받은 것이다.


규정대로라면 6억원 이상 아파트는 담보인정비율(LTV) 40%를 적용받아 A씨처럼 9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는 은행에서 3억6000만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사업자금 명목으로 담보대출을 받으면 LTV가 80%로 확대돼 7억2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해당은행은 A씨가 제출한 아파트 매매 계약서를 통해 대출금이 사업자금 용도가 아닌 주택구입자금으로 쓰일 줄 뻔히 알면서도 대출해줬다.

금융감독원은 9개 은행과 단위 농·수협 12개 등 30개 금융사가 올 1월부터 5월 사이 취급한 중기대출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 같은 중기대출 규정위반 사례 1247건을 적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점검 대상 30개 금융사 중 29개사가 편법 대출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다른 용도로 쓰인 대출액수는 총 2095억원에 달했다.

◆사업자금 대출로 부동산 매입

가장 대표적인 유용 사례는 중기대출을 받아 아파트 같은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다.

사업자들은 부동산 구입 계약을 맺은 뒤 계약서를 은행에 제출하고 사업자금을 대출받아 잔금을 지불한다.

또 단위 농협에서 사업자금 대출을 받아 은행에서 가계자금 명목으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갚은 뒤 그 단위 농협에 은행의 담보권이 해지된 부동산을 담보물로 제공한 사례도 많았다.

이 두 가지 방식으로 대출한 사례가 8개 은행 92건(148억원),6개 저축은행 190건(286억원),12개 단위농·수협 627건(972억원),3개 캐피털사 83건(1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외에 휴·폐업 업체에 대출하거나 대출받은 이후 휴·폐업을 했는데도 사후관리가 소홀했던 사례가 149건(242억원)이었으며,투기지역의 아파트를 담보로 법인차주에게 기업자금 대출을 해준 경우도 106건(312억원)으로 조사됐다.

◆금감원,지점장부터 부행장급까지 문책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용도 외 유용 대출을 모두 회수토록 조치하고 대출을 취급한 임직원에 대해서는 제재심의 절차를 거쳐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용도 외 유용 취급사례가 많이 나타난 단위 농협 등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기관 제재 방안도 강구할 계획이다.

박세춘 금감원 은행검사국 기획팀장은 "대출액수와 고의성 여부에 따라 은행 영업점장에 대해 견책이나 감봉조치를 취하고 사안이 중할 경우에는 본점 직원들과 담당 부행장에게도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대출금 사후 관리 강화를 유도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