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새로움에 매료됐다.

엉뚱하다 싶어도 생소한 것을 보면 호기심부터 일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중학교 때 영어사전을 다 외운 조숙한 천재.하지만 학자보다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노정석 태터앤컴퍼니 사장은 '무엇'으로 규정되는 순간 늘 '다른 무엇'으로 변신했다.

지금 하는 일도 '잠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른한살 젊은이의 이름 앞에는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해커-컴퓨터 보안 전문가-카레이서-웹2.0 기업 대표….

#해커가 되다

"199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 입학해서 인터넷을 처음 접했어요.

인터넷이 막 도입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푹 빠졌죠." 그는 KAIST 내 해커 동아리 '쿠스(KUS)' 회원이 됐고 3학년(1996년) 때 동아리 회장을 맡았다.

그해 4월 국내 최초의 해킹 사건으로 알려진 '포항공대(현 포스텍) 해킹'을 주도했다.

쿠스 회원들이 포항공대의 전산시스템을 공격해 학사행정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

포항공대는 곧바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 달 뒤 쿠스 회원 4명이 입건됐고 동아리 회장이던 그는 서울구치소에 40여일간 수감됐다.

이후 벌금 200만원을 내고 풀려났지만 무기정학 조치를 받았다.

'쿠스'를 해체하는 조건으로 겨우 복학했다.

노 사장은 "그땐 철이 없었다.

많이 반성하고 뉘우쳤다"고 말했다.

#보안전문가가 되다

복학 뒤 한동안 "아노미(심리적 공황) 상태"였다고 한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변신의 계기는 사업이었다.

1997년 KAIST 교수와 학생들이 사내 벤처로 만든 컴퓨터 보안업체 인젠의 창업 멤버로 참여한 것.해킹과 보안은 인터넷 시대의 창과 방패다.

한쪽은 공격하고,한쪽은 방어하지만 시스템을 잘 알아야 한다는 점에선 서로 닮은꼴이다.

노 사장은 "교수님들이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해킹)를 양성화해 비즈니스(보안)로 이끌어줬다"고 말했다.

#웹2.0 기업을 차리다

인젠에선 기술이사로 7년을 일했다.

2002년 인젠은 코스닥에 등록했고 사업 기반을 잡았다.

그때 회사를 그만뒀다.

"인젠이 자리를 잡고 나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창업 때 받은 인젠 지분을 팔아 돈을 마련했고 그해 9월 젠터스라는 또 다른 보안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이번엔 1년반 만에 망했다.

"회사를 직접 운영해본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도 벌고 경험도 쌓을 겸 SK텔레콤에 취직했다.

하지만 1년반쯤 지나자 다시 '끼'가 발동했다.

SK텔레콤을 그만두고 가진 돈(4억8000만원)을 털어 2005년 9월 태터앤컴퍼니를 차렸다.

세 번째 창업이었다.

이번엔 사업 아이템을 블로그로 바꿨다.

"앞으로 인터넷과 개인의 힘이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온라인에서 개인의 힘을 키우는 데 블로그가 가장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블로그는 다른 포털업체들의 블로그보다 네티즌의 개성과 취향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

사실상 개인 홈페이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블로그가 이용자의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서비스하는 개인 블로그들을 통해 온라인 거래가 이뤄지고 광고도 붙게 될 것"이란 게 노 사장의 관측이다.

또 거기서 수익이 나면 회사(태터앤컴퍼니)와 개인(블로그 주인)이 나눠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죠.웹2.0이 말하는 참여와 개방 정신이 반영된 사업 모델입니다."

#기업가치는 숫자가 아니다

태터앤컴퍼니가 제공하는 블로그의 회원 수는 15만명.아직 제대로 수익이 나는 수준은 아니다.

한 해 매출도 몇 십억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한국 내 벤처투자회사인 '손정의펀드'는 작년 9월 이 회사에 15억원(지분 30%)을 투자했다.

"앨빈 토플러가 말했죠.기업가치를 볼 때 숫자만 봐선 안 된다고.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중요하다고.그걸 믿어준 것 같아요."

#카레이싱 4차례 우승

어릴 적 꿈은 카레이서였다.

"멋져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KAIST 시절 노 사장은 인근 대청댐에 나가 친구들과 함께 야간 자동차 경주를 하곤 했다.

실력은 수준급.용인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자동차 대회인 '타임 트라이얼 레이스'에서 2002년 네 차례나 우승했고 2003년엔 프로로 전향했다.

기업 스폰서 없이 직접 팀을 꾸려 두 차례 대회에 나갔다.

프로 최고 성적은 4등.그해 결혼하면서 장인 장모의 반대로 그만뒀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다.

"나중에 성공하면 카레이싱을 취미로 갖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손에 잡는다.

즐겨 읽는 책은 로마사나 삼국지 열국지 같은 고대 전략서."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람을 만날 일이 많더군요.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잖아요.

자연히 사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책에 관심이 가더군요."

#"나는 영원한 벤처기업가"

앞으로 목표는 "계속 사업을 하는 것"이다.

"성공하면 벤처 마인드(모험과 도전)를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는 가장 인상적인 기업인으로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꼽았다.

이유가 재밌다.

"영화에서 봤던가.

그분 원칙이 '박수칠 때 떠나라'더라고요.

제 생각이랑 딱 맞는 것 같아요."


< 노정석 사장은 >

1976년 전북 전주 출생

1992년 전북과학고 입학

199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입학

1997년 보안업체 인젠 창업 멤버

2002년 보안업체 젠터스 설립

2004~2005년 9월 SK텔레콤 근무

2005년 9월 블로그 전문회사인 태터앤컴퍼니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