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龍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공복(公僕)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 대신 지도자라는 말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는 지도자,특히 '정치 지도자'라는 말이 언론에서도 보편화됐으며,국가 경영의 비전을 가진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국가는 과연 경영의 대상인가? 경영 하면 흔히 기업 학교 병원 등의 경영을 떠올리는데,이들은 각각 이윤 교육 의료 서비스 등의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조직이다.

따라서 그러한 구체적 목적 달성을 위해 설계하고 계획을 세우는 등 조직 내의 효율적 자원 배분(配分)을 위한 경영이 필요하며,경영 성과가 곧 조직의 운명을 가름한다.

그러나 국가는 구체적 목적을 가진 위의 조직과 달리 그 목적이 추상적이다.

가치관 취미 습관 기호(嗜好) 등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한 자발적 교환을 통해 망(網)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구체적 목적을 가진 조직과 달리 경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 경영'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문제의 심각성은 국가를 사회 공학적(工學的)으로 설계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게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발상은 인간 이성의 사유(思惟)와 인지 능력을 신봉하는 데서 연유하지만,우리 이성이 알 수 있는 바는 매우 제한적이다.

인간 이성으로 사회를 설계하고 계획하려 했던 국가들의 몰락에서 그러한 한계를 명백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근래 한국 사회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대통령과 대학 총장들이 벌인 내신 반영 비율을 둘러싼 토론회에서는 국가 설계의 수장인 '지도자'로서의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수하다는 대학의 공과대학 진학자가 적분(積分) 기호도 모르는가 하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 배양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국가 설계주의적 교육의 폐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가 설계주의적 독일 교육의 경쟁력 추락과 민간의 창의성을 살린 미국 교육의 경쟁력 향상도 전혀 참고자료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 우리 인간이 얼마나 무지(無知)한지를 모르는 설계주의자들은 한국 교육을 획일화함으로써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 값은 잡겠다"는 정책 또한 사람들이 어디에 어떤 집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설계주의자들의 오만에 가득 찬 작품이다.

원가 공개에 이은 분양가 규제와 중과세 정책으로는,다른 사항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파트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정책 입안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가격 하락은 아파트 시장의 붕괴를 의미할 뿐이다.

모든 인간 행동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하늘을 두 쪽 낼 만큼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꼭 해야 할 일은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정책은 애당초 틀렸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계획도 장구(長久)한 시간을 두고 형성되는 도시에 대한 진지한 이해 없이,책상 위에서 '세상이 이렇게 되면 참 좋겠다'라는 설계주의적 발상에서 연유한 것이다.

금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즈음 '국가 경영(?)의 대의(大義)'를 품은 사람들이 저마다 비전을 제시하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국가를 경영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국민들도 새로운 국가 경영의 비전을 가진 '정치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국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구세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공직자들은 개인의 일은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처리한다는 믿음을 갖고,그들을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는 공복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국가 불간섭주의 하에서 새로운 비전은 만개하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도 최소화된다는 사실이 일반 상식이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