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서울 여의도 면적의 세 배(180만평 규모)에 달하는 조선소 남단에 특수선(군함)사업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6번 도크에서는 지난 5월25일 진수식을 가진 국내 첫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KDX-III,7600t급) 내 무기체계 장착 공사가 한창이다.

건물 10여층 높이의 지브(jib) 크레인이 세종대왕함 위로 각종 무기체계와 철 구조물 등을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세종대왕함 내부는 마치 이삿짐 정리가 덜 끝난 집 같았다.

전투정보실(CIC),이지스 레이더실,전투체계장비실(CSER) 등 각방에는 채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각종 전자 패널과 케이블,무기·통신체계 부품 등이 널려 있다.

"사람들은 진수식을 하면 선박 건조가 모두 끝난 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특히 군함의 경우 진수식 후 이뤄지는 무기체계 장착,시스템 간 연동작업 등이 진짜 어렵고 까다롭습니다." 80여평 규모의 전투정보실에서 엔지니어 등과 함께 설계도면을 보며 조립작업을 지휘하던 왕병철 현대중공업 특수선 생산2부장의 설명이다.

최첨단 무기와 전자시스템은 워낙 예민하기 때문에 선박을 먼저 진수시켜 물 위에서 자중(自重,자체 무게)과 부력에 의한 미세한 뒤틀림과 변형 등을 거쳐 선체 구조물이 완전하게 제자리를 잡은 다음 무기 및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 난코스는 세종대왕함의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이지스 레이더 타워를 선체에 탑재하는 작업.특히 레이더 장착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표면 평평도와 레이더 각도를 맞추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4500t급 KDX-II 3척을 비롯해 지난 30년간 군함만 만들었다는 왕 부장도 "이지스 레이더가 장착될 표면의 평평도 허용 오차는 0.5mm 미만,각도의 허용 오차는 1만분의 1도 미만이어야 할 정도로 초정밀 작업을 요구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50여척의 이지스함을 건조한 미국 BIW조선이 레이더 장착 기술료로 130억원을 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를 거절했다.

대신 이지스체계 공급 업체인 미국 록히드마틴이 제공한 매뉴얼과 도면 등을 참고서 삼아 독자 기술로 설치키로 했다.

무기체계 설치에 필요한 각종 공구류(jig) 등도 자체 개발해야 했다.

현대중공업이 이 같은 고난도 작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데는 특유의 '해봤어?'정신이 한몫했다.

정밀 측정을 방해하는 사소한 망치질 소리도 피하기 위해 4개월간 야간 작업을 거듭한 끝에 레이더 장착 준비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용헌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본부 전무는 "미국 회사쪽에서 기술력을 사라고 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역수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적의 레이더에 대한 노출을 줄이기 위해 독자 개발한 '스텔스' 설계 개념을 도입한 것도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건조 기간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건조 경험이 풍부한 미국 BIW조선도 이지스함 설계에서 인도까지 평균 60개월이 걸리는 데 비해 현대중공업은 이를 49개월로 단축시켰다.

군함 설계 인력만 250명에 달하는 데다,사내 선박해양연구소 테크노디자인연구소 등의 기술 지원으로 시너지효과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세종대왕함의 무기 및 전자통신체계 설치 공정률은 85%에 달한다.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국형 미사일 수직발사기 설치와 다음 달 세종대왕함의 브레인인 이지스 레이더 체계를 장착하면 최신예 전투함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 전무는 "세종대왕함 건조는 한국 선박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군함 설계와 건조 기술뿐만 아니라 무기와 전자통신체계 장착 및 이들 체계 간 연동기술 등 최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김수찬 기자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