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거의 못 하고 컴퓨터도 쓰지 않는다.

레바논 이민자 출신의 멕시코인 카를로스 슬림(67).

이름도 생소한 그가 빌 게이츠를 누르고 최고 갑부가 됐다는 소식에 세계의 이목이 몰리고 있다.

3일(현지시간) 멕시코의 온라인신문 센티도코문은 최근 멕시코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 회장의 재산이 세계 최대 부호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보다 90억달러 많은 678억달러(약 62조원)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세계 2위 자산가인 버핏을 제쳤다는 포브스 보도가 나온 지 석 달 만이다.

슬림 회장이 보유한 휴대폰업체 아메리카모빌의 주가가 2분기에 26.5% 폭등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그의 재산은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8%에 달한다.

통신회사 텔멕스를 통해 멕시코 유선통신의 90%를 독점하고 있고 금융,에너지,저가 항공,담배회사,음반제작사,인터넷회사 등도 소유하고 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슬림이 소유한 병원에서 태어나 그의 전력회사 전기를 쓰며,그의 건설회사가 닦은 도로를 그의 정유회사 기름을 넣은 차로 다닐 뿐 아니라 전화나 쇼핑,식사도 그의 회사 것으로 해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슬림은 소매업과 부동산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로부터 사업 수완을 물려받았다.

12살 때부터 용돈출납부를 꼼꼼하게 기록했고 15살 때는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투자금은 멕시코 최고 대학인 우남(UNAM)대 시절 몇 십 배로 늘어났고 이를 종자돈으로 1960년대부터 유리병 공장과 담배회사 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슬림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남들이 버린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며 몸집을 키운 그는 1990년 민영화 흐름을 타고 공기업 텔멕스의 지분 51%를 사들이기에 이르렀다.

'싸게 사서 빨리 불린다'는 그의 모토가 빛을 발한 셈이다.

잡식 취향과 빠른 결단력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도로,댐 건설 입찰을 통해 건설부문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통신업체인 미국 버라이즌의 남미 본사를 인수,사업 영토를 푸에르토리코와 도미니크공화국까지 넓혔다.

슬림은 통 큰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미국의 클린턴재단 등에 거액을 후원하고 있고 지난달에는 멕시코의 보건과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4년간 100억달러를 쓰겠다고 밝혔다.

그는 통신산업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정치권에 막강한 로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는 슬림그룹의 독점이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렸다고 비난했다.

여섯 자녀를 둔 그는 열광적인 야구 팬이고 그림에도 관심이 많다.

수집한 그림은 멕시코시티의 소우마야 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다.

소우마야는 신장병으로 숨진 아내 이름이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