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建 榮 < 고운세상피부과 네트워크 원장 medilink00@naver.com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피부과 전공의 시험에 떨어졌던 때다.

어릴 때부터 큰 좌절 없이 커왔던 터라 실패에 대한 실망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한동안 방황하며 이대로 안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이때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현지에 특별히 잘 아는 사람도 없고,자비로 유학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선진의료를 배우면 도움이 될 거란 다소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떠났다.

유학시절 좌절도 있었지만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우라야스라는 도쿄 위성도시에 살았는데,대학병원이 있는 도쿄시내까지 전철로 출퇴근하면서 아침에는 논문을 공부하고,밤에는 막차를 타고 들어가며 그날 기록해 두었던 일본어를 암기했다.

오전에는 피부과 외래진료에 들어가고,오후에는 병동과 실험,저녁 일과 후에는 일본 의사시험 공부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또 다른 좌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년여에 걸쳐 준비한 일본 의사시험 응시원서를 내러 간 날,응시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필자가 유학가기 2년 전 법이 바뀌어 일본 국적이나 영주권이 없으면 응시자격을 주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나를 초청한 교수도 몰랐던 사실이어서 적잖이 당황했고,갖은 고생을 인내해가며 키워왔던 일본에서의 꿈을 접고 이듬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일본에서의 경험이 당시에는 좌절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내가 있게 해 준 밑거름이 됐다.

선진 의료시장에서 쌓은 경험과 의료계의 앞날을 볼 수 있는 넓은 시야,일본어 습득,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가치를 쌓는 기회가 됐다.

가장 힘었던 그 때 사실은 인생의 새옹지마(塞翁之馬)를 경험한 셈이다.

최근 입시의 중압감을 못 이겨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기사들이 종종 눈에 띈다.

물론 대학 시험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대학입시가 중요한 이유가 대학에 붙고,떨어지는 시험성적 때문이 아니라 시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새옹지마가 있다.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되는 시기를 넘기면,그 경험은 좋은 거름이 되어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그러한 배움의 시기가 쌓이면 좋은 순간은 반드시 온다.

희망을 항상 가슴에 품고 노력하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좌절을 좌절로 만드는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다.

컵의 물이 반밖에 담겨있지 않은지,반이나 담겨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달 일정으로 한경에세이를 쓰기 시작,벌써 마지막 글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본다.

내 컵의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