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지만 여야 대선주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앞세운 '정치파업'에 대한 국민적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지 벌써 3일째인데도 틈만 나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대선 싸움에 국민적 관심사인 파업 사태가 뒷전에 밀린 것이다.

12월 대선표를 의식해 노동계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리더들이나 사회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현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유력 대선주자 진영은 "정치파업은 절대 안 된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라면서도 "대선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상황이라 모든 현안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요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온통 '대권 놀음'에 빠져 있다.

웬만한 국민적 관심사는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검증 공방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진 박 전 대표 측은 최근 상승세를 탔다며 연일 새로운 '메뉴'를 찾아 이 전 시장을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에 뒤질세라 최근 지지율 하락 등으로 난관에 봉착한 이 전 시장 측도 '배후설'을 제기하며 맞불 작전을 벌여온 터다.

'빅2'의 감정 싸움이 도를 넘으면서 당 지도부의 관심은 온통 파국을 막기 위한 노력에 쏠려 있다.

범여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범여권 통합 논의가 유일한 주제다.

너도 나도 소통합이냐 대통합이냐를 놓고 상대를 공격하기 바쁘다.

감정 싸움으로 비화된 열린우리당과 중도개혁신당·민주당 간의 대선 주도권 다툼은 점입가경이다.

범여권은 대통합을 통한 후보 단일화냐,각개 약진 후 후보 단일화냐를 놓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새로 시작한 형국이다.

여나 야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과 민생은 모두 뒷전이다.

국민연금법,사학법 등 각종 법안 처리가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금속노조 파업 사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 등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파업 사태에 대한 정치권 차원의 대책회의가 단 한 차례라도 열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에서조차 의제에서 빠졌다.

정부가 파업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거듭 밝힌 가운데 정치파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노조 내부에서 나오고 있고 참다 못한 시민들이 직접 집단 행동에 나섰는데도 정치권만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다.

사회 갈등을 조정·해결해야 할 정치권만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정치권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김용호 인하대 정외과 교수는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이합집산에 몰두해 있다"며 "관심은 두고 있지만 유권자 중 노동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노동자 표를 의식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부터 야당 후보 검증에 나서기 앞서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해결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최진학 정책실장은 "정치권이 대선 준비에 치우쳐 사회 현안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대선주자나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창/노경목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