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 뤄후(羅湖)역.홍콩에서 중국으로,중국에서 홍콩으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기차역이다.

하루 평균 25만2000명이 경계를 넘나든다.

복잡한 통행증 심사(입국 심사)를 마치고 홍콩 땅으로 들어서자 뤄후역은 '로우역'으로 바뀌어 있다.

한자로는 똑같이 '羅湖(나호)'라고 쓰지만 발음이 달랐다.



같은 역사의 앞문과 뒷문 이름이 다른 것이다.

중국과 홍콩은 이렇게 묶여 있으면서 떨어져 있고 같으면서도 다르다.

홍콩인들은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금 분명 중국 국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중국 여권이 없다.

상하이 증시의 내국인 전용 주식(A주)을 사지도 못한다.

실질적으로는 외국인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홍콩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홍콩 중문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1.5%는 자신을 '홍콩인'으로,18.6%는 '중국인'으로 여겼다.

나머지는 홍콩인이면서 중국인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통일된 의식이 없는 것이다.

홍콩 SGS애셋매니지먼트 예영호 총경리(사장)는 "홍콩인들은 중국이나 중국인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하면서도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내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완벽하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첵랍콕 공항에서 직원 교육을 맡고 있는 충충옌(鍾仲欣·27)씨.그녀의 남편은 중국 선전으로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이다.

충씨는 "홍콩인이나 샹강(홍콩의 베이징식 발음)인 어느 것으로 불려도 상관 없다"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돈이 최고라는 현실적 성향이 강한 홍콩인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홍콩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홍콩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흡수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홍콩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엔 꼭 중국 돈인 위안화를 바꿔 주는 환전소가 있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위안화가 통용된다.

번화가 소호백화점에서 고급 의류를 팔고 있는 조안 창씨는 "대륙 쇼핑객이 없으면 매출이 절반은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홍콩인들은 중국에 대해 아직 100%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적 민주화,체제 독립 등에 대한 중국 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에 대해서는 예스(yes)라고 말하는 그들도 정치적으로는 대답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욕구,심화되고 있는 빈부 격차 등 홍콩 사회 내부의 모순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홍콩에 바라는 것은 안정이다.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조용히 있어 달라는 얘기다.

홍콩은 중국의 대만 통일 모델인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일국(一國)에 중점을 두며 정치·사회적 안정을 원하는 중국 정부와 양제(兩制)를 강조하며 정치·경제적 자주를 중시하는 홍콩인들의 생각이 상호 보완 작용을 할 것인지,아니면 충돌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아 보인다.

홍콩=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