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경욱씨(36)가 쓴 네번째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문학과지성사)은 역사소설이라기보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산 한 인간의 정체성 찾기 과정을 깊숙하게 그린 작품이다.

김씨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2003년 다른 소설을 준비하기 위해 '하멜표류기'를 읽던 중 하멜보다 26년 먼저 조선에 와 살고 있던 한 네덜란드인을 언급한 문장에 눈이 번쩍 뜨여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천년의 왕국'을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봄까지 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했다.

'천년의 왕국'은 380여년 전 제주도에 표류한 뒤 죽을 때까지 조선에서 살았던 세 명의 네덜란드인에 관한 얘기다.

작가는 이들 중 '박연(朴燕)'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 살았던 벨테브레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는 "국경과 국적의 의미가 모호해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과거의 소재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조선을 풀어내다 보니 우리 역사인 데도 낯설게 느껴진다.

사람 이름부터 '자주빛 구름''복숭아꽃' 등으로 표기돼 있다.

또 조선인을 이교도라고 생각했던 벨테브레의 관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새로 만나는 이교도가 늘수록 나의 불안은 붉게 달궈졌다.'

'의고체'(擬古體·예스러운 표현이나 문체)를 쓴 까닭에 소설가 김훈의 작품과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씨는 이에 대해 "좋아하는 작가를 닮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벨테브레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해 문체는 오히려 담담하게 가져가려 했다"고 덧붙였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