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2) 확산되는 실리주의 ‥ "회사가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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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파업 같은 투쟁에 관심 없어요.
회사의 경영실적이 좋아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도 많이 받을 수 있잖아요."
대한유화 울산공장의 류광민 노조부위원장은 "일반 조합원들은 투쟁 대신 실리주의 노선으로 돌아선 지 오래됐다"며 "노동운동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던 사업장이었다.
2003년에 파업까지 벌이고 지난해에는 13%의 고율 임금인상안을 제시해 회사 측이 애를 먹기도 했다.
노사 간 힘겨루기가 이어져 4개월이란 세월을 협상으로 보냈다.
그러던 노조가 올 들어 몰라보게 변해 버렸다.
내몫만 챙기던 이기주의적 노조에서 회사의 경영을 고려하는 합리적 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노조는 지난달 28일 임금동결을 선언,노사관계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임금동결 동참 배경에 대해 류 부위원장은 "원료값은 치솟고 경기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노조가 내몫만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며 "조합원들도 회사가 망하는 것보다 좋은 경영실적을 내는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해까지 입던 빨간 조끼를 벗어던지고 작업복과 비슷한 색깔인 파란색을 착용하고 있다.
빨간색이 너무 자극적인 데다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김영길 관리담당 상무는 "마찰보다는 상생의 노사문화를 원하는 종업원 정서가 노조의 변화를 이끌었다"며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종업원이 회사에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노조도 인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창원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 노조는 투쟁에 관한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강경노선을 고수해온 곳이다.
1987년 설립 이후 줄곧 마산 창원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해왔고 불법파업도 밥먹듯이 벌여온 강성노조다.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파업을 벌인 그야말로 '투쟁에 살고 투쟁에 죽는' 그런 노조다.
지난해에도 모두 18차례에 걸쳐 67일간의 장기파업을 벌이며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노조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경영진을 보면 욕설을 퍼붓고 한자리에서 대화조차 나누길 꺼려 했던 노조가 대화테이블에 앉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2003년 이 회사를 인수했을 때 투쟁만능주의에 사로잡힌 노조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며 "주인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면서 노조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S&T중공업 노사관계 안정에는 근로자들에게 부여된 스톡옵션도 한몫을 했다.
근로자들은 스톡옵션 권리를 행사할 경우 1인당 1000만~4000만원의 평가차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들 사이에는 파업으로 얻는 임금인상분보다 회사 실적이 좋아져 스톡옵션 행사로 얻는 이득이 크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하나를 양보해 열 개를 얻는다는 판단에 과격 투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산업현장을 지배하던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기운이 지배하고 있다.
마치 열병을 앓은 뒤 면역이 생겨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듯 불법파업 등을 겪은 사업장들마다 파멸의 노사문화 대신 상생의 노사문화가 찾아들고 있다.
2005년 조종사 노조가 25일간 파업을 벌였던 아시아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파업 노사협상 타결이 기대되고 있다.
강종철 노동부 울산지청장은 "과거처럼 막무가내식 노동운동은 찾아볼 수 없고 노동운동도 새로운 생존전략을 짜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창원=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