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의 토지 보상이 주민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빨리 이달부터 보상 절차에 들어간 대구·울산의 경우 사업 시행자인 토지공사가 주민들의 요구로 내규까지 어겨 가면서 민간 감정평가업체보다 감정가를 낮게 평가하는 공기업인 한국감정원의 참여를 고의적으로 막아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보상받게 되는 현지 주민들이 한국감정원의 보수적인 평가에 반발하면 오는 9월로 예정된 착공 일정이 지연될 것을 우려,보상금을 더 주더라도 민원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것이 토공의 뜻이다.

이에 따라 대구·울산과 다음 달부터 보상금 지급이 개시되는 경북 김천,전남 나주,강원 원주 등을 포함해 총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혁신도시 보상금이 최대 5000억원 정도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1일 토지공사와 감정평가업계 등에 따르면 토공은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울산 대책위원회로부터 '감정평가법인을 선정할 때 현지 토지 소유자들이 기피하는 한국감정원을 배제해 달라'는 문서를 받은 것을 빌미로 한국감정원에 감정평가기관 선정에 필요한 평가수행 능력서를 요청하는 공문을 아예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감정평가 금액이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될 경우 감정평가사를 50명 이상 둔 업체들에는 모두 평가수행 능력서를 요청하도록 규정한 토공 내규에 어긋나는 것이다.

울산의 보상금 추정액은 3800억원에 달해 당연히 이 내규가 적용돼야 한다.

대구의 경우 감정원 측의 거센 항의로 토공이 뒤늦게 지난달 말 공문을 보내 모양새를 갖추기는 했지만 감정원이 제외되는 결과는 똑같았다.

토공은 대구와 울산 혁신도시를 각각 2개 구역으로 나눠 구역당 3개씩 총 12개의 민간 감정평가법인을 선정,지난 4일과 7일부터 감정 평가에 들어갔다.

현행법에는 주민들이 감정평가법인 1곳을 추천하고 사업 시행자가 2곳을 선정해 감정 평가를 실시한 뒤 평균치를 산출,보상비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토공은 대형 국책 사업의 감정 평가를 주민들 손에 맡겨 버린 셈이다.

토공의 이 같은 조치는 '상부'에서 정한 이들 혁신도시의 착공 일정을 맞추기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주민들이 한국감정원의 낮은 평가액에 반발할 경우 보상 절차 지연이 불가피해지고 그렇게 되면 올 9월로 예정된 착공 일정도 수개월 정도 늦어져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혁신도시 사업이 출발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게 되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무리수로 인해 혁신도시 보상금이 당초 계획보다 훨씬 불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대구·울산 이외의 다른 혁신도시 주민들도 한국감정원 배제를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감정평가업계의 한 관계자는 "민간 평가법인의 감정가는 통상 한국감정원보다 5~10% 정도 높은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에 따라 민간 업체에 감정 평가를 전부 맡길 경우 혁신도시 보상금이 2500억~5000억원 정도 늘어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토공 관계자는 "주민들이 보상에 협조하지 않으면 9월에 착공식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토공이 내규를 어겨 감정평가법인을 선정한 것은 문제"라면서도 "다음 달부터 감정평가법인의 부실 감정에 대한 제재가 엄격해지기 때문에 민간 감정업체가 주민들의 입맛에 따라 감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혁신도시는 가스공사 석유공사 도로공사 한전 등 공기업과 공공기관 124개가 대구 울산 부산 진주 등 10곳으로 옮겨 가는 국책 사업이다.

국·공유지가 대부분인 부산과 대구·울산을 제외한 김천,나주,원주 등 7개 혁신도시는 이미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보상계획 공고를 마쳐 앞으로 감정평가사를 선정한 뒤 감정에 들어가 다음 달 중순부터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정부는 당초 부산을 제외한 9개 혁신도시의 보상금이 총 4조3500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으나 지난해 이들 혁신도시의 땅값 상승률이 평균 6.44%에 달해 실제 보상금은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