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 변호사는 얼마 전 10명의 동료와 함께 소속 로펌을 나와 새살림을 차렸다. 15명 규모의 법무법인 은율이 바로 그것. 로펌 운영방식에 대한 견해차이도 분사(spin off)의 이유 가운데 하나지만 무엇보다도 인수합병(M&A),해외증권발행 등의 분야에 특화된 전문로펌을 키워보겠다는 나름의 생각에서다. 전문성을 갖출 경우 다른 법인과의 합병 등 다양한 발전전략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제휴키로 구체적인 얘기까지 오간 미국 로펌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법률시장 개방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로펌들 간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소형 로펌이 쪼개지는가 하면 다른 로펌과 합치려 하는 등 물밑 움직임이 활발하다. '태풍의 눈'은 단연 전문성을 갖춘 중소형 로펌들이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용환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최근 법무법인 세종을 비롯한 여러 로펌들로부터 합병제의를 받았다"며 "지평이 송무와 기업자문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서 다른 로펌들의 구애공세가 잇따르는 모양"이라고 평가했다. 지평이 지난해 법률전문 월간지 '아시아로(Asialaw)'로부터 국내 송무분야 2위로 평가받고 2005년 성사시킨 34억달러(약 3조4000억원) 규모의 하이트-진로 M&A건이 그해 아시아 자본시장에 관한 국제금융 전문지인 '파이낸스아시아'에 의해 '베스트 M&A 거래'로 선정되는 등 규모에 비해 역량이 뛰어난 점을 다른 로펌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 대표는 "현재는 독자생존하기로 방향을 잡은 상태"라면서도 "조건이 맞는다면…"이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목하 '열애' 중인 법무법인 지성과 평산도 전문로펌 간의 짝짓기 케이스다. 평산은 소속 변호사가 12명에 불과한데도 내로라하는 대형로펌들을 제치고 지난해 '아시아로'에서 뽑은 선박(Shipping) 분야 법률자문에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인천신공항 제2연육교(인천대교) 사업 등 굵직한 파이낸싱프로젝트 분야 성과도 수두룩하다. 이를 '덩치키우기'에 안달이 난 지성(국내 변호사 39명)이 가만둘 리 없다. 주완 대표변호사는 "한 달 전만 해도 둘 사이가 뜨거웠는데 업무 중복 문제로 지금은 연애 중"이라면서도 "협상이 물건너 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여러 군데서 러브콜이 들어오는데 변호사가 없어서 수임을 못할 정도로 노동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분야 등을 특화시킨 게 주요 원인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법무법인 충정은 최근 M&A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다른 로펌과의 합병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다국적기업 전문인 '서울로(Seoul Law)그룹'을 합병한 충정은 외국계 고객 기반을 넓히는 등 재미를 본 데 힘입어 추가적인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 김진환 대표변호사는 "단순히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전문성 있는 로펌과 합병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며 "다각도로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들도 합병 움직임에 예외가 아니다. 법무법인 세종의 박교선 변호사는 "합병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조건만 맞으면 누구와도 합병할 수 있다"며 적극성을 보였다. 세종은 2000년 1월 열린합동법률사무소와 국내 처음으로 합병을 이뤄낸 '큰손'이어서 M&A 정국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화우 소속의 한 변호사도 "광장 태평양 세종 화우 등 2~5위권 대형로펌 사이에서도 합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며 "이 경우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넘어설 수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