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20년을 되돌아봐도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담합'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인 적은 거의 없다.

기사를 송고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다음 날 쓸 거리를 찾아 머리를 쥐어짜는 게 동료기자들의 생활이었다.

기자생활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이른바 '취재 선진화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의 취재공간을 더 제한하려 하니 과연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언론을 편하게 생각하는 집권 세력은 그 어느 나라에도 없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집권 1기 2년 반 동안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애리 플라이셔의 말을 들어보자."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많은 언론은 그저 헐뜯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중략) 기자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부정적이며 대립을 시사하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내용이 나쁜 이야기일 경우 마지막 문장은 더 나쁘다.

아주 긍정적인 뉴스라고 해도 마지막 문장은 그 뉴스 때문에 배 아파할 사람들을 위해 꼭 한마디가 더 붙는다."('대변인'이라는 책에서)

플라이셔 대변인은 그렇게 미운 언론이지만 매일 하는 정례 브리핑 때는 최고참 기자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브리핑 룸 정면 중앙에 설치된 연단을 지켰다고 회고했다.

언론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취재 선진화 방안으로 기자들이 다닐 공간이 줄어든 후가 걱정이다.

정부 부처가 기자들의 질문이나 자료 요청을 제대로 받아들여 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개는 흉내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자화자찬이나 일삼는 현 정부의 행태를 보면 그런 걱정이 기우만은 아닐 성 싶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경제성과를 칭찬한 것이나 대통령비서실이 펴낸 '있는 그대로,대한민국'이라는 책도 언론 같은 제3의 기구가 아닌 스스로의 평가로만 치장하는 이 정권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있는 그대로,대한민국'의 서론을 보자."올라가야 좋을 것은 모두 올라갔고,낮아져야 좋은 것은 어김없이 낮아졌습니다.

속도도 좋았습니다.

올라가면 나쁜 것은 2004년을 기점으로 꺾였고,내려가면 안 되는 추세는 그 시점에 멈췄습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같은 평가의 근거로 2만달러에 육박한 국민소득,선진국 클럽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연 4.3% 성장률,안정적인 물가,3000억달러를 넘어선 수출 등을 들었지만 어이없다는 생각뿐이다.

공약으로 내건 7% 성장을 못하고,집권 초기 그럴 듯하게 포장했던 금융허브 도약이 공염불로 끝난 데 대한 반성은 왜 안 하는지.4년을 흘려 보내고서야 전경련에 모든 규제를 총점검해 달라고 요청하는 무딘 행정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는 왜 따져보지 않았는가.

백 번 양보해 국정의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평가는 국민의 몫이어야 한다.

그것을 못 참고 스스로 나팔을 부는 행태 속에서 '취재 선진화방안'은 매도당할 수 있다.

아전인수식 평가에만 의존하고 객관적인 제3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겠다는 저의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소통의 길을 스스로 막아버린 참여정부.과연 누구의 평가를 들으려 하는지….

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