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공단에 있는 직원 100여명 규모인 자동차부품업체 K사의 Y대표(71)는 얼마 전 기자에게 기업 승계와 관련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사업을 아들(38)에게 물려주고 은퇴할 요량으로 세무사와 상담해보니 '아들이 내야 할 상속세가 족히 수십억원을 넘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는 것. 아들이 그 많은 돈을 마련할 능력도 없거니와 기업 승계 뒤 경영하며 낼 방법도 없다는 사실이 더 힘빠지게 한다고 했다. Y대표는 "젊음을 바쳐 키워온 사업체를 아들이 물려받아 임직원과 함께 더 성장시켜 주기를 바라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제조업체를 창업해 20년 안팎 오로지 한우물을 파온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은퇴를 앞두고 '상속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가 자식들에게 사업을 물려줘 '가업(家業)'으로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고율의 상속세가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30억원 이상을 물려줄 경우 절반(10억~30억원은 40%,5억~10억원은 30%)을 뚝 떼어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게 현실인 까닭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작년 말 327개 중소 제조업체 CEO(평균업력 16.1년)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61.2%가 은퇴 후 자식 등 후계자에게 경영을 승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승계 과정에서 기업 상속세와 증여세(40.2%)를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지목해 이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고민이 중소 제조업 CEO들로 하여금 국가 경제에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도록 한다는 점이다. 노사분규 등 가뜩이나 제조업하기 어려운 마당에 이런 스트레스까지 겹치다 보니 '차라리 사업을 때려치우겠다'는 마음을 굳히도록 하고 있어서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도 상속세 부담 등 때문에 자신 대에서 폐업하겠다고 답한 CEO가 10명 중 2명이나 됐다.

섬유업체 C사 창업자인 K대표(63)는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주는 것보다 정리한 뒤 별도 회사를 창업하는 게 오히려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들은 가업을 잇기 위해 기업을 자식들에게 승계시키는 사례가 많은데 고율의 상속세가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법이 고용 창출의 주체인 기업들에 되레 일자리를 없애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상속 재산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상속액의 50%까지 세금으로 매기는 것도 분명 지나치다는 목소리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한다. 독일도 한국처럼 상속액의 50%를 세금으로 매긴다. 하지만 최근 중소기업 및 가족기업에 대해 '일자리 유지 조건부 상속제 면제제'를 도입,시행에 나섰다.

이는 상속 기업의 재산에 대해 이자 없이 상속세 납부를 유예해 준 다음 1년간 기업이 유지될 때마다 10분의 1씩 상속세를 감면,10년 동안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경우 상속세 전액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면제 기준은 승계 기업인이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일자리를 '없앨' 수 있는 우리의 현 상속세제 대안으로 검토·도입해 볼 가치가 있어보인다.

윤진식 과학벤처중기부장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