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의 힘은 막강했다.

전도연씨의 여우주연상 수상에 힘입어 '밀양'의 예매율이 대뜸 2위로 뛰었다.

서울 시내 극장은 평일 낮에도 객석이 꽉 찬다.

젊은 연인들부터 삼삼오오 모이는 아줌마까지.이대로라면 '캐리비안의 해적'과 '스파이더 맨' 등 할리우드물에 몽땅 내주다시피한 상영관을 얼마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 영화를 보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복합 상영관이라고 해 봤자 6개관이면 '해적'이 3~4개,'거미'가 1~2개를 차지하고 나머지 하나에 한국 영화가 걸리거나 그나마 또 다른 외화와 교차 상영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통에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을 못 찾는다던 지난해의 일이 거짓말 같은 현실이다.

가정의 달에 맞춰 '아버지' 주제 영화가 우르르 개봉됐지만 하나같이 주저앉았다.

비슷한 때 개봉된 '스파이더 맨'의 경우 평이 엇갈렸는데도 '볼 만한 게 없다'는 풍문 덕인지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6월 초 대작 '황진이'가 개봉된다지만 '해적' 및 '슈렉'과의 승부는 만만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마당에 '밀양'이 어느 정도 뒷심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수상 소식에 극장을 찾은 이들의 평점은 그리 높지 않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내지 '구원은 어떤 형태로 오는가'라는 주제는 어렵고 주연 배우의 연기에 기댄 채 이렇다 할 볼거리를 장만하지 않은 영화는 무겁다.

이창동 감독 자신의 말처럼 '소통이 쉽지 않다.'

그래도'밀양'의 칸영화제 수상에 주목하는 것은 상의 비중도 비중이지만 부쩍 늘어난 한국 영화의 위기설과 무관하지 않다.

관객은 줄고,한류 바람은 주춤하고,수출도 기대에 못 미친다.

진단에 따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스크린쿼터 축소,호화 대작에 길들여진 관객의 까다로운 입맛,영화 산업의 취약한 기반,배급사에 좌우되는 대규모 동시 개봉 등.

하지만'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괴물' 등 1000만 관객 동원작이 모두 한국 영화인데서 보듯 흥행과 국적은 상관 없다.

문제는 영화의 수준이다.

영화의 재미는 호화 컴퓨터그래픽 같은 외형적 요소에만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신선한 소재,탄탄한 줄거리,오래 기억되는 대사,영화 전반에 스민 삶의 철학 등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한국 영화는 지금도 아이디어는 있되 그것을 담아낼 이야기와 세밀한 구조 없이 흥행작 유사품 만들기에 매달려 있는 경향이 짙다.

대작도 좋지만 다양한 제재 및 영화 자체의 작품성과 재미로 승부를 거는 작품이 많아져야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확대가 가능하다.

지금처럼 철저한 사전 준비와 서사에 충실한 구성,관객 취향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이 유행을 좇아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어설픈 대작으로 대박만 노리는 풍토가 계속되면 언제 투자자와 관객 모두로부터 외면당할지 알 수 없다.

'밀양'의 흥행 성공 여부는 어디까지나 관객의 눈과 입소문에 달렸다.

결과가 어떻든 한국 영화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리트머스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큰 상을 받은 전도연씨를 비롯한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모쪼록 이번 칸 영화제 수상이 성장통을 앓고 있는 한국 영화계가 발전적 대안을 찾아 나서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