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해방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 정치가 앓아온 대표적인 고질병으로 '대권(大權)'병을 꼽을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평소 '행정의 달인' 또는 탁월한 대학총장으로 존경받던 분들이 대권 촉망을 받다 퇴진하고 마는 진풍경이 이어지는 바람에 '대권'병의 유병률(遺病率)은 다소 낮아진 듯하다.

그렇지만 '대권'병보다 더 심한 고질병이 있다.

바로 한국 정치,아니 정당들의 '대통합'병이다.

평소에는 뿔뿔이 갈라져 불구대천의 원수로 불목(不睦)하다가도 세가 불리해질 것 같으면 언제나 만병통치의 처방으로 등장하는 것이 대통합론이다.

장장 5년의 임기 막바지에 이르면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던 이 증상의 전조는 내홍과 대립,그리고 지리멸렬이었다.

문제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임기를 마치며 마땅히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의 소재가 희석된다는 데 있다.

국정수행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오기 전에 재빨리 대통합,대동단결을 내세우며 변신을 하면 도대체 여당으로 수행해 온 국정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며,국민은 누구를 상대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투패를 뒤섞어 다시 가르면 잘 모르겠지,국민의 눈을 피할 수 있겠지 여기는 착각이다.

물론 과거에는 사생결단의 당위가 통했다.

사악한 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했고 야당이나 재야 할 것 없이 대동단결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권의 행동원리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별로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진보세력이든 중도좌파든 벌써 두 차례나 연거푸 집권을 했으니,군사독재정권의 학정에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항거해 나라를 구한다는 질풍노도의 정당성은 이제 더 이상 효능이 없다.

과거 운동경력의 프리미엄 없이 오로지 정치적 역량과 국정수행의 결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살벌한 처지가 된지 오래다.

국정수행 결과에 따라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냉엄한 책임정치의 심판정에 서 있으면서도,자신은 열심히 잘 했는데 국민이 알아주지 못해 또는 언론이 왜곡해 선거에 지고 지지율이 떨어진다며 변명하는 것은 프로정치의 태도가 아니다.

'대통합'병은 한국 정치를 악보의 되돌이표처럼 언제나 출발점으로 후퇴하게 만든다.

기존의 집권여당으로는 안 되니 구국투사처럼 자못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탈당,동반탈당,집단탈당을 감행하고 나서는 '한 지붕 여러 가족'마냥 또는 이른바 '제3지대'에서 다시 만나 '대통합당'이라는 것을 만들기는 하지만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인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당이 외부 충격 없이도 일촉즉발 '내파'의 전조를 보이던 곤경에서 드라마틱한 후보단일화와 선거 전야의 이벤트를 꿈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기는 후보간 균열로 당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사고 있는 야당조차도 '막판 단일화'의 이벤트를 꿈꾸고 있기는 하지만.

당을 깨고 대통합을 한다고 하지만,설령 패배가 불을 보듯 확실하더라도,기우는 당을 살리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의원들이 속출한다면 어떨까.

패배를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이 한 일에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서 선서를 하면 어떨까. 집권당이 실정을 하면,아니 실정이 아니라도 국민의 지지를 상실하면 그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루아침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하는 충격적인 정치게임이지만,만년 집권여당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오히려 정당으로서는 그런 정치적 패배와 추락의 경험을 거듭할수록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이론은 장례식을 거듭하며 발전한다'고 했으나,정치 또한 패배를 통해 성숙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언제나 헤쳐모여를 거듭하며 분열과 대통합의 '데자뷰' 현상을 연출하는 한,한국 정치에 성숙은 없다.

이제는 조급한 대통합보다는 정치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