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일종의 '안전판'이나 다름없는 주식이었다.

주식형펀드에서 삼성전자를 시가총액 비중만큼 들고 있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시장 평균 정도의 수익률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시장'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 주가와 코스피지수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사정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삼성전자 주가가 시장과 따로 가면서 펀드 전체의 수익률을 까먹는 주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IT주 몰락,굴뚝주 부상

삼성전자 주가와 코스피지수의 장기 그래프를 보면 2005년까지는 동행하다 2006년 초부터 극명하게 엇갈린다.

코스피지수는 커다란 조정 없이 대세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 주가는 줄곧 하락세다. 과거 논리로 보면 삼성전자 주가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는 증시 대세상승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굴뚝주의 부활 때문이다.

실제 최근 상승장에서는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주가 철저히 소외된 반면 굴뚝주로 불리는 소재와 산업재 관련 주식들이 시세를 주도하고 있다. 올 들어 불과 몇 달 만에 주가가 2~3배 가까이 치솟은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등이 대표 주식들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에 대해 "세계 경기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했다. IT주들의 실적을 좌우하는 미국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반면,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의 고성장세가 조선 철강 화학 등 굴뚝주들의 부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석규 교보투신 사장은 "실제 올 1분기 기업 실적을 보더라도 IT주들의 이익은 감소한 데 반해 아시아 고성장에 기반을 둔 철강 조선 화학 기업들의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증시 퇴조를 산업 재편의 신호탄으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신성호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미 미국의 경우 2000년 IT붐을 기반으로 한 신경제가 시들해지면서 증시에서도 에너지와 헬스케어 산업 등의 시가총액이 IT업종을 추월했다"며 "10년 후 우리나라도 이러지 말란 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편입 펀드 및 파생상품 수익률 비상

삼성전자 주가 부진은 관련 금융상품 시장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펀드들의 경우 수익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채권평가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코스피200지수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을 때 이익이 나도록 설계된 ELS 상품 중 최근 만기가 도래한 9개 상품의 수익률은 -70.47%를 기록했다.

이들 9개 상품에 총 1331억원의 자금이 투자됐지만 삼성전자 주가 하락으로 원금 손실이 발생,만기 때 투자자들이 가져간 돈은 393억원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지수보다 항상 높은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최근 2년여 동안 시장 평균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편입 비율이 비교적 높은 삼성그룹주 펀드의 수익률도 지지부진하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삼성그룹적립식주식1ClassA'펀드의 경우 6개월 수익률이 13.19%로 일반 성장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19.68%)을 밑돌았으며 1년 수익률도 12.10%로 성장형 평균치(25.47%)보다 낮았다.

삼성그룹주 펀드는 최근 들어 삼성전자 편입 비율을 낮추고 난 후 수익률을 회복하고 있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삼성전자 편입 비율은 과거 15%에 달했지만 최근 11%대로 낮아졌고 그나마 삼성중공업과 삼성물산 삼성테크윈 등의 주가가 상승하면서 최근에는 수익률이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차별론 대두

그러나 여전히 삼성전자를 '지는 별'로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삼성전자를 쳐다보지 않던 가치투자자들 사이에 '삼성전자 다시보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전무는 "최근 증시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IT주가 역차별을 받으면서 오히려 저평가된 성장 가치주로서의 매력이 생기고 있다"며 "펀드 편입 여부 확대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우종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IT산업은 전형적인 사이클을 타는 비즈니스"라며 "IT의 최대 수요처인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회복될 경우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2년간의 정체를 마감하고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삼성전자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코스피지수는 2000까지 별다른 조정 없이 내달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정종태/김남국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