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 협상 타결 두 달여 만인 25일 공개되면서 찬반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책본부(범국본) 등 반대하는 측에선 정부가 숨겨온 독소조항이 수두룩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독소조항은 없으며 빠진 내용은 요약해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이프가드'다.

일부에선 일반 세이프가드의 경우 발동 횟수가 10년에 한 번으로 제한돼 있다며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수출이 많은 공산품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만큼 한국에 더 유리하다고 맞서고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FTA가 서로 무역을 늘리자고 시작한 것인 만큼 세이프가드는 보완조항으로 제한 규정을 두는 것이 맞다"면서 "FTA 체결 취지에 역행하는 조항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협정문 공개로 새로 밝혀진 내용이다.


◇자동차

현재 4%의 수출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5~20t 트럭 섀시'가 즉시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됐다.

트럭 섀시는 적재함 등을 장착하지 않은 미완성 트럭을 말한다.

이 분야에서 최근 3년간 국내 완성차 업체의 대미 수출액은 연간 60만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나 관세 철폐를 계기로 수출 증가가 기대된다.

반면 디젤 승용차에 대한 관세는 협정 발효 후 3년이 지나야 없어진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미국 디젤차 시장 진출을 목표로 디젤차량을 개발 중이다.

한·미 FTA가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발효되기까지 걸릴 시간을 감안하면 국산 디젤차가 미국 진출 초기 1~2년간은 무관세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산 일본차가 국내에 무관세로 수입되는 데도 문제가 없게 됐다.

한·미 양국은 순원가법상 35% 이상,집적법상 35% 이상,공제법상 55% 이상의 부가가치가 역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정되면 일본차나 유럽차도 미국산으로 인정하도록 합의했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일본차의 경우 역내 부가가치 비율이 60~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섬유

미국은 '원사기준' 원산지 규정을 관철하는 대신 공급이 부족한 일부 원사에 대해선 예외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즉 직물과 의류에 대해 각각 한국 수출의 10%에 달하는 최대 1억SME(㎡ 상당)까지 예외를 인정키로 했다.

그러나 수출국 생산자가 우회수출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될 경우 미국은 불법 물량의 최대 3배까지 예외 인정량을 줄일 수 있다.

자동차에 있어 분쟁 해결이 안되면 관세를 환원하는 '스냅백'과 같은 강력한 이행 조치를 둔 것이다.

또 섬유 우회수출 방지를 위해 정부는 미국에 소유·경영진 명단,근로자 수,기계대수 및 가동시간,제품명세 및 생산능력,납품기업 명단,미국 바이어 연락처 등 수출업체 정보를 연례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당초 미국은 한국의 모든 섬유 생산자 및 수출자의 정보 제공을 요구했으나 대미 수출 업체나 투입재를 생산하는 기업에 한정하고,정보 제공 범위 중에서도 임금,근로시간,근로자 숙련도 등은 제외했다.

섬유 세이프가드의 경우 관세 철폐 이행기간(10년)이 만료된 뒤 10년까지 인정된다.

즉 20년간 세이프가드가 인정되는 것이다.


◇ 농산물

논란이 됐던 농산물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는 쇠고기 돼지고기 등 30개 주요 민감품목에 적용되는데,수입이 일정량 이상으로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관세가 부활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공산품 등 일반품목에 적용되는 '양자 세이프가드'와 달리 발동기간이나 횟수 제한이 없다.

그러나 발동되려면 농가에 막대한 타격을 줄 만큼 수입물량이 늘어나야 한다.

또 30개 민감품목 중 설탕 고추 마늘 양파 사과 인삼 등 6개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24개 품목은 관세철폐와 동시에 세이프가드가 자동 폐지돼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쇠고기의 경우 15년에 걸쳐 40%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는데,세이프가드가 발동되려면 FTA 발효 첫해에 27만t 이상 쇠고기가 수입돼야 한다.

그 다음해부터 발동기준이 매년 6000t씩 늘어나 15년차에는 35만4000t 이상 수입돼야 세이프가드가 발동된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기 전인 2002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22만t이었고 지난해 국내 쇠고기 전체 소비량이 37만4000t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이프가드 발동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도 있다.


◇ 의약품

의약품·의료기기 가격산정이나 급여와 관련된 주요 위원회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제약사의 로비를 차단하기 위해 명단을 비공개해왔다.

의료품·의료기기 위원회는 양국이 통상마찰을 사전 협의하기 위한 모임으로 최소 매년 1회 이상 회합하고 그 결과를 한·미 FTA 공동위원회(장관급)에 보고토록 한 것도 새로운 내용이다.

관세 철폐와 관련해 화장품 수입액의 46%를 차지하는 기초화장품이 10년으로 정해졌으며 △초음파영상진단기(CT) △차기공명촬영기(MRI) △의료용·수의용 기기 △내시경 △X선 사용기기 등도 모두 10년의 관세 철폐 기간이 확보됐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공급하는 특허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가치를 약값에 적절히 인정한다는 문구도 새로 포함됐다.

신약의 가치를 약값으로 인정해주기로 한 것이다.


◇ 금융

미국이 특혜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던 우체국 보험에 대해서 변액보험,퇴직연금보험,손해보험 등 새로운 상품 취급을 제한하기로 했다.

농협 수협 신협과 새마을금고의 경우 그동안은 각각 농림부,해수부,행자부 등의 감독을 받아왔으나 협정 발표 후 3년 이내에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을 받도록 하기로 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금융기관이 본연의 업무인 대출,예금,보증 등의 업무를 제외한 인력채용,인사,회계 등의 업무를 외국에 있는 본점에서 통합처리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어렵사리 확보한 금융 단기 세이프가드의 경우 7가지의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즉 △발동기간이 1년 이내일 것 △몰수(confiscatory) 금지 △이중 환율제(dual exchange rate) 금지 △외환규제로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국내에 묶인 자산의 운용에 대한 제약 금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