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좋은 5.5세대에 일단주력 8세대 라인 투자는 더 지연될듯

'5.5세대냐 8세대냐.' LG필립스LCD는 지난해 초부터 이 두 가지 신규투자처를 놓고 저울질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7월 당초 유력하게 검토했던 8세대 투자를 보류하고 수익성이 좋은 5.5세대에 먼저 투자키로 결정하고서도 최종 결정을 미룰 만큼 고민은 깊었다.

회사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된 투자는 자칫 회생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어서다.

그런 상황에서 LG필립스LCD가 투자규모를 더 늘려 5.5세대로 가닥을 잡은 것은 (5.5세대에서 만들 수 있는) 모니터와 노트북PC용 패널 시황이 급격히 개선되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8세대 투자도 급하지만 당장의 '수익성'이 급선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시장은 신규투자에 있어 LG필립스LCD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LG필립스LCD 다시 '공격 앞으로'

LG필립스LCD는 지난해 7월 파주 P8공장 건물에 약 1조5000억원(건물,유틸리티,생산설비 각 5000억원)을 들여 5.5세대 라인을 짓기로 했다고 공시했었다.

당초 8세대 라인을 들여놓을 건물이었지만 우선 수익성이 좋은 5.5세대부터 투자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시황 악화로 '성장보다는 수익성 위주(value over volume)'로 경영기조를 바꾼 데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지난해 연간 영업적자 규모가 약 9000억원에 달할 만큼 상황은 더 악화됐고 5.5세대 투자마저 하염없이 지연됐다.

증권 시장에 'LG그룹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았을 정도다.
[LG필립스LCD,5.5세대 2조 투자] "長考 끝났다 … 다시 공격 투자"

그러던 LG필립스LCD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건 권영수 사장이 취임한 지난 1월.뼈를 깎는 원가절감 노력과 함께 그동안 지연됐던 투자 타당성을 철저히 따져봤다.

지난 4월에는 5500억원에 달하는 전환사채(CB)를 발행,실탄도 확보했다.

마침 4월부터 시황이 되살아났고,LG필립스LCD는 당초 계획보다 투자 금액을 늘려 잡으며 다시 '공격 투자'에 나섰다.

건설.유틸리티에 1조원을 투입한 데 이어 설비투자 금액을 당초 5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LCD장비업체엔 '천만 다행'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권 사장은 "기존 설비의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5.5세대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다면 바로 8세대 투자로 넘어갈 계획"이라고 말했었다.

최근까지도 8세대와 5.5세대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결국 5.5세대 투자를 결정한 건 그동안 투자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은 소재·장비업체들에 대한 배려 차원이 큰 것으로 보인다.

LG필립스LCD 협력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5.5세대 투자계획에 맞춰 장비 납품을 준비해왔다.

이미 장비를 생산해놓고 발만 동동 구르던 업체도 있었다.

이들에게 LG필립스LCD의 투자 재개가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LG필립스LCD 관계자는 "지금 와서 5.5세대 투자를 백지화하기엔 발을 너무 깊이 담갔다"고 설명했다.


◆8세대 투자,조금 늦어도 상관없다?

5.5세대에 대한 우선 투자 방침으로 LG필립스LCD의 8세대 시장 진입 시기는 더욱 늦어질 전망이다.

2년 후에 양산에 나선다고 해도 오는 8월 8세대 라인을 가동하는 S-LCD(삼성전자와 소니의 합작사)보다 2년이나 늦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양산을 시작한 일본 샤프와 S-LCD가 상당기간 '선행 투자자의 이점(first mover's advantage)'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라는 게 LG필립스LCD의 입장.권 사장은 그동안 "이미 PDP라는 경쟁 업계가 50인치 제품을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시장에 진입하는 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며 "소재·장비 업체 등 산업군이 갖춰져 업계 전체에 원가경쟁력이 생긴 후에 시장에 진입해도 늦지 않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