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4년만에 다시 수사기관에 구속됐다.

그에게는 1993년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해 호화 저택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대검 중수부에 구속된 쓰라린 과거가 있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가 검찰에 구속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김 회장은 이번엔 경찰에 구속된 첫 재벌총수라는 불명예도 남기게 됐다.

갓마흔을 넘겨 자신감으로 가득한 재벌총수였을 때인 1993년. 그는 검찰에 세 번째 소환됐을 때 `집에 돌아갈 수 있겠느냐'라고 기자들이 묻자 "여러분이 도와주셔야죠"라며 미소를 짓는 등 여유를 보였다.

구속이 결정돼 대검청사 15층 특별조사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현관으로 내려왔을 때도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들까지 연루됐다는 점 때문인지 김 회장은 14년 전과 달리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이었다.

영장심사 때는 100여 명의 기자들이 늘어선 것을 보자 얼굴이 굳어지기도 했다.

그의 행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과거보다 더 싸늘했다.

외화 밀반출 사건을 바라보는 여론에는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많다 보니까' 생길 수 있는 그저 그런 부유층의 재산 범죄였지만 김영삼 정부 초기 업적인 금융실명제를 정면으로 어긴 괘씸죄가 더해져 구속됐다는 인식이 은연중 퍼져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보복을 위해 재벌 총수가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어쩌면 단순한 내용의 이번 사건은 비아냥거림과 냉소의 대상이 됐고, 경찰의 축소 은폐 논란과 아들의 중국 출국 등이 이어지면서 여론의 분노를 샀다.

그가 겪어야 할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 생활도 당분간 세간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 유치장은 4평 크기의 방에 7명이 지내도록 돼 있다.

재벌 회장들이 주로 머물던 서울구치소와는 환경이 크게 다르다.

개인 탁자나 TV도 없다.

유치장 가운데에 있는 공용 TV를 창살 사이로 봐야 한다.

사식도 반입이 안돼 유치장에 수감된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밥을 먹거나 경찰서 구내 식당의 밥을 사먹어야 한다.

지난해 현대차 그룹 수사 때 대검 중수부에 구속됐던 정몽구 회장이 서울구치소에서 사용했던 1.07평의 독방에는 TV와 수세식 화장실, 세면기, 식탁을 겸할 수 있는 작은 책상, 간소한 이부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경찰서 유치장은 서울구치소와 달리 경찰서 정문에서 들어갈 때까지 `보는 눈'이 많아 이른바 `옥중 경영'을 하기도 쉽지 않다.

김 회장은 경찰 수사 기간인 열흘이 지나 사건이 검찰로 넘어오게 되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