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어요. 공연 속에서 시각적인 환경으로 완성될 때 비로소 존재합니다."

무대미술가 박동우씨(45)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명성황후'의 무대를 디자인한 주인공이다.

이중회전 무대로 당시 역사 속 한국의 역동적인 상황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무대 디자이너보다는 극장인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하나의 공연은 총체적인 노력의 집합으로 이뤄집니다.

연기자,무대 디자인,조명연출 등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모여야 하고,저는 그중 일부를 담당했죠."


"영화세트가 현실세계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에 가깝다면 공연무대는 창작 그 자체예요."

공연무대와 영화세트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명성황후의 배경이 된 경복궁을 예로 들면,영화 속에서는 그 당시 존재했던 경복궁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지만 공연무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뮤지컬 '명성황후' 속에서 경복궁처럼 생긴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대본을 읽고 떠오른 가상의 세계를 무대디자이너 '박동우의 해석'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무대는 화려하게 보기 좋은 것보다 단순해도 연기자를 위한 기능적인 공간을 제대로 갖출 때 제 빛을 발휘합니다.

무대와 연기자가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등산하는데 드레스 입고 나온 것과 같지요."

'덫-햄릿에 대한 명상' '조선제왕신위' '겨울나그네' '뉴욕에 사는 차이나맨의 하루' '실비명' 등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무대만 해도 250개가 넘는다.

보통 한 달에 한 작품씩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그는 얼마의 보수를 받을까? 1995년 명성황후 첫 공연 때 받았던 보수가 1000만원,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공연의 로열티가 더 많다고.

그가 작품을 결정하는 기준은 까다롭다.

"우선 희곡을 자세히 읽어봐요.

장식적인 작품이나 우아하고 귀족적인 내용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죠.저는 선이 굵고 힘 있는 비극을 좋아합니다."그가 가장 즐거울 때는 공연대본을 읽고 머릿속에 무대를 구상할 때고,가장 힘든 시간은 대본 속의 가상세계를 눈에 보이게 현실로 옮길 때다.

"무대가 만들어져 공연의 막이 올라가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요.

대본을 정독한 뒤 장면별로 이미지를 연구해 대본에 맞는 시각 자료들을 빠짐없이 구합니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얼마전 막을 내린 '시련'의 경우 17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 지방의 집들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했다.

어떤 가구를 사용했는지,숲 속의 모습은 어땠는지,불은 어떻게 켰는지까지 낱낱이 조사했다.

그 다음 여러 장면들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공연무대는 하나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짜임새 있는 무대 구성으로 공연 전체의 장면을 보여 줘야 한다.

"이 때 도구 하나 하나의 모습들을 명함만한 종이 수백 장에 스케치한 뒤 결론에 근접한 것들을 모아 기본적인 배치도를 그립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만들어진 기본 배치도를 가지고 연출가 등 다른 스태프들과의 아이디어 회의를 거치면서 하나의 무대 도면이 완성된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들어간 극예술연구회를 통해 무대 디자인을 처음 접하게 됐지만,한결같이 이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우전자에 입사했다.

"졸업한 뒤에도 학교를 계속 찾았어요.

연극동아리 친구들과 만나는 내내 무대미술가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바로 홍익대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무대디자인 공부를 시작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그동안 무대미술 분야에서 쌓아온 그의 입지는 그간 받은 상들이 말해 준다.

한국뮤지컬 대상,한국연극예술상,서울연극제 미술상 등 1989년부터 지금까지 13여 차례나 수상했다.

특히 지난해 받은 제16회 이해랑연극상은 그에게 의미가 크다.

1년에 단 1명의 연극인에게 주는 상을 최초로 무대미술가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많은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명성황후' 뉴욕 공연이다.

"처음 한국공연 테이프를 보여줬을 때 미국 공연계 관계자는 우리의 능력을 의심했어요.

우리의 수준을 아주 낮게 평가하고 있었지만 명성황후의 무대가 올라가자 그 때서야 놀라워하더군요." 그때를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도 양성하고 있다.

"최근 공연산업이 커가면서 이쪽에 관심을 갖는 후배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인스턴트를 너무 좋아해서 안타까워요.

무대를 디자인해 보라면 우선 잡지에 나온 그림부터 뒤집니다.

마음에 든다고 쉽게 집어 들지만 바닷가에 널린 모래 한줌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는 후배와 제자들에게 독서를 많이 하라고 가르친다.

공연 대본에 맞는 가장 적합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활자를 읽으며 장면들을 머릿 속에 그리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

"두드려라.열릴 것이다." 그의 신조다.

지금까지 그에게 시련은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의 어떤 힘든 고통도 그에게는 기쁨일 뿐이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