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 급속도 확대…스크린 독점 논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전국 617개 스크린에서 1일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3'가 어린이날(5일) 대목을 앞두고 놀라운 속도로 스크린을 확장해가고 있는 것.
4일 영화계에 따르면 개봉 첫날에만 50만2천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스파이더맨3'는 개봉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전국의 상영 스크린 수를 더욱 늘려가고 있다.

주요 영화배급사와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측의 자체 집계로는 지난해 '괴물'의 수준인 750개 스크린을 넘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국의 스크린 수가 1천600개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2개 중 1개 관에서 '스파이더맨3'를 상영하고 있는 셈이다.

쇼박스 관계자는 "'스파이더맨3'와 같은 대규모 흥행작의 경우 각 영화관 측에서 자체적으로 상영관을 늘리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집계는 이뤄지기 어렵지만 800개 스크린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맨3' 배급사인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 측은 할리우드 거대자본 영화에 의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자 정확한 상영관 수를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소니픽쳐스 관계자는 "개봉관이 617개라는 사실은 맞지만 그 이후에 얼마나 늘었는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극장 쪽에서 자체적으로 상영관 수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급사도 정확한 스크린 수를 알기는 어렵지만 어린이날을 전후해서는 상영관 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맨3'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할리우드 영화를 선호하는 서울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의 경우 전체 5개 상영관(샤롯데관 포함) 중 4개관(스크린 점유율 80%)에서 '스파이더맨3'를 상영하고 있으며 용산CGV는 총 11개 상영관(골드클래스관 포함) 중 7개관(점유율 64%)에 '스파이더맨3'를 내걸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멀티플렉스인 메가박스 코엑스점은 16개관 중 6개관에서 '스파이더맨3'를 상영 중이지만 좌석 수가 다른 관의 2~3배에 달하는 M관과 2관, 3관, 4관, 5관 등에서 모두 '스파이더맨3'를 상영하고 있기 때문에 좌석 점유율은 거의 절반에 달한다고 메가박스는 설명했다.

'스파이더맨3'의 스크린 싹쓸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배급사 측의 공격적 마케팅도 마케팅이지만 지난해에 비해 1분기에 부진한 실적을 거둔 멀티플렉스들이 자발적으로 '스파이더맨3' 상영관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CGV를 비롯한 대부분의 멀티플렉스들이 '왕의 남자' '투사부일체' 등 흥행 대작들이 개봉됐던 지난해 1분기에 비해 부진한 실적을 올 1분기에 기록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나온 흥행대작인 '스파이더맨3'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진을 만회하려 한다는 얘기다.

CGV 관계자는 "영화관 입장에서는 '스파이더맨3'와 같은 시장주도작이 나와줘야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며 상영관 편성도 관객의 호응이 큰 영화 위주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올 1분기에는 지난해에 비해 실적이 부진했는데 그나마 '스파이더맨3'가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3'의 이 같은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다른 소규모 영화들은 이렇다 할 상영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회사원 문모(39ㆍ서울 종로구) 씨는 "과거 군 생활할 때 저격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저격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더블타겟'이란 영화를 보고 싶어 3일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에 갔지만 이미 종영한 뒤였다"면서 "어떻게 개봉한 지 1주일도 안된 영화가 종영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문씨는 "'스파이더맨3'만 5개 상영관 중 4개를 차지하고 있더라"면서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는데 이는 돈벌이에만 급급해 소수자의 취향은 배려하지 않는 배급사와 영화관의 횡포"라고 분개했다.

지난달 12일 개봉 이후 전국에서 13만여 명의 관객만을 끌어모아 흥행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개봉 3주 만에 종영될 위기에 놓여 있으며 '스파이더맨3'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소규모 영화들은 개봉관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또 현재 상영 중인 '아들'이나 '날아라 허동구' 등의 한국영화도 어린이날이 낀 이번 주말에 '스파이더맨3' 상영관이 더욱 확대되면 급속한 스크린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