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일 고액권 발행을 공식화함에 따라 10만원권, 5만원권의 지폐 도안으로 누가 선정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여성계와 과학계, 독립운동유공자 단체, 역사학계, 일부 정치권 등에서는 나름의 입장에서 특정인물을 고액권의 인물초상으로 선정해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고액권 발행절차 가운데 가장 골치 아픈 작업이 다름 아닌 인물 초상의 선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박승 한국은행 총재 재임중 마련된 한은의 화폐제도개선방안에는 액면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과 함께 고액권 발행 방안을 병행해 추진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으며 당시 지폐권종을 3종에서 5종으로 늘리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지폐권종을 늘리면서 인물초상을 ▲정치인 및 군인 ▲학자 ▲애국지사 ▲과학자 ▲여성 등 5개군으로 나눠 일반인을 상대로 인물 선호도 설문조사까지 마쳤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로는 정치인.군인으로는 세종대왕, 애국지사는 김구, 과학자는 장영실, 여성은 신사임당, 학자는 정약용 등이 가장 높은 응답비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총재 재임중 고액권 발행이 무산되고 기존 지폐의 위.변조 방지기능만 보강하기로 하면서 현재의 1만원(세종대왕), 5천원(이이), 1천원(이황) 3종 지폐는 기존 인물도안을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의 인물초상들은 정치인 및 군인과 학자로 분류되는 인물이 채택돼 있는 만큼 고액권에는 애국지사와 과학자, 여성 가운데 2명이 선택될 공산이 커 보인다.

과거 한은의 자체 인물선호도 조사에서는 백범 김구가 항상 상위권에 랭크돼 온데다 항일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감안할 때 고액권 인물초상에 채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일각에서는 백범이 최고액권인 10만원의 인물초상이 될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굳어진다면 5만원권의 인물초상으로는 과학자와 여성 가운데 한쪽이 채택될 전망이다.

여성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 위인을 반드시 새 화폐 도안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학계의 반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새지폐에 우리 과학자 얼굴 모시기 운동 추진위원회'(위원장 연세대 의대 방사선과 정태섭 교수)는 2004년말 이공계.과학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2천257명의 서명을 받아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을 새 지폐의 도안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하는 건의서를 한은에 제출하기도 했다.

여성계를 대표한 인사로는 신사임당의 선호도가 높지만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신사임당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전통에 의해 강요된 수동적 현모양처를 상징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율곡 이이가 5천원권의 인물도안에 채택돼 있다는 점에서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까지 지폐인물로 넣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대안으로 여권신장 운동에 공로가 큰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고 이태영 씨를 인물도안으로 채택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폐인물 도안은 사후 상당한 시일이 지나 인물에 대한 역사적, 객관적 평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채택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이태영 씨의 도안 채택 여부도 불확실하다.

독립운동가 후보로는 선호도 1위 백범 김구에 이어 유관순 열사가 2위를 차지했는데 유관순 열사는 독립유공자와 여성계를 모두 대표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특히 문화부가 최근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을 다시 지정하면서 기존의 수심 깊은 중년부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청순하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바꾼 것도 지폐인물 도안 채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계 인사로는 현재까지 장영실이 가장 무난한 편이다.

고액권 권종은 단 2종이어서 여성계와 과학계, 독립운동 유공자 단체 등 3개 부문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묘안을 짜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한은의 고민이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