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에게 필요한 기능 물어 새 제품에 적용

국내 에어컨 시장의 경쟁이 유난히 치열했던 지난해 초. 삼성전자 에어컨 상품기획팀에 특명이 떨어졌다.

경쟁사에 비해 취약한 에어컨 판매량을 높이라는 것. 매년 기술과 디자인을 바꿨지만 에어컨의 경쟁력이 일시에 높아지지 않는 상황.

신상품기획팀은 에어컨을 구입하는 고객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자사 에어컨 매장을 찾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새로 나오는 에어컨은 어떤 기능을 갖췄으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에어컨 설치 엔지니어들을 통해 고객의 생생한 요구를 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해 나온 '열대야 쾌면 에어컨'. 다른 나라와 달리 유난히 열대야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고객들은 여름철 낮시간대보다 잠잘 때 에어컨의 효율을 가장 민감하게 느낀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당연히 마케팅 컨셉트는 '그날의 기온과 열대야 정도에 따라 가장 쾌적한 실내온도를 맞춰주는 에어컨'이라는 데 맞췄다.

결과는 대박. 삼성전자의 지난해 8월 에어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배나 급증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개념이 허물어지는 웹2.0 시대. 삼성그룹 각 계열사들은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 밀착형'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은 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B2C'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아울러 그룹 차원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이다.

올 들어 그룹과 각 계열사별로 모든 임직원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이른바 '웹2.0 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가장 활발한 소비자 밀착 경영을 펼치는 계열사는 삼성전자다.

TV 생활가전 휴대폰 등 대부분의 제품들이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각 제품 개발 과정에서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들의 욕구를 조사하는 단계를 거친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한 '보르도' LCD TV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보르도 TV 개발에 앞서 삼성전자는 전 세계적으로 고객들의 잠재된 욕구를 조사했다.

이 결과 상품기획팀과 마케팅팀 관계자들은 세계 각국의 TV 구매자들의 가장 큰 구매 요인으로 TV 화질과 함께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TV는 사각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와인잔 모양을 형상화한 보르도 TV를 내놨고,결과는 대성공이었다.

TV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과 냉장고 오븐 등의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소비자 체험단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소비자들의 아이디어를 끌어모으는 게 아니라 상품화가 끝난 뒤 시장에 출시한 뒤에도 소비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제품 개선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게 '애니콜 드리머즈'.

'애니콜과 함께 꿈꾸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 시스템은 일반 고객들의 애니콜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창구다.

고객들이 상품기획은 물론 디자인,마케팅 등의 실무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신제품 개선 방안 등도 제안한다.

실제 삼성전자는 애니콜 드리머즈 1기 회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품 홈페이지인 '애니콜랜드 (www.anycall.com)'의 디자인과 구성을 개선하기도 했다.

그룹 내 대표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도 '고객패널제'란 소비자 밀착형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고객패널제는 일반 고객들이 보험 상품의 초기 판매에서부터 서비스, 광고 등을 직접 비교 체험한 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견은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경영진에도 그대로 보고될 정도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사내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툴 개발에 나섰다.

전 임직원이 대외비를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A계열사 상품기획팀이 B라는 신상품 개발을 앞두고 있다면 다른 계열사 상품기획팀은 물론 일반 사원들까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이를 위해 이르면 올 하반기께 사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시스템과 웹사이트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시스템은 일단 사내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장기적으로는 외부 인사들의 참여도 유도한다는 게 삼성의 방침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