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培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오랜 협상 끝에 타결된 한·미 FTA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크다. 이번 타결로 그동안 일본의 기술과 중국의 가격경쟁력 사이에서 너트 크래킹(호두까기) 현상에 빠진 한국 경제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미 FTA는 경쟁력이 약한 부문과 강한 부문 사이의 불균형을 확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표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농업부문 종사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경쟁력 면에서만 본다면 농업보다 금융부문이 더욱 취약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2006년 농업부문의 경우 미국이 8위,한국은 35위인 반면에 금융은 미국이 1위,한국은 37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부문의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국내 금융산업의 개방도가 높아 추가 개방 폭이 크지 않고,단기 세이프가드 도입 등으로 금융산업의 기본 인프라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오히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만 부각되고 있다. 외국 금융회사의 진출로 새로운 경영기법이 유입(流入)돼 국내 금융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고,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선진 금융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 후생(厚生)이 증가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돌이켜 보면 외환위기 직후 국내 금융시장 개방을 확대할 때도 지금처럼 장밋빛 기대가 컸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던 선진금융기법이 도입되었는지,그 결과 금융경쟁력이 향상되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외국계 자본의 지배력이 높아진 금융회사들이 주로 안전한 주택담보대출이나 수익성이 높은 PB금융에 치중하자 자금의 선순환 구조가 왜곡(歪曲)되고,금융의 양극화 현상만 나타났다. 외환위기 당시 40위권에 머물렀던 금융경쟁력은 오랜 기간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아시아 금융허브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에게 한국의 월스트리트를 만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산적해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어도 당장은 우려하는 금융서비스의 국경 간 거래의 허용이나 신(新)금융상품의 도입 등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글로벌 추세 속에 국내 금융회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제나 제도를 계속 존속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미국계 금융회사들은 신금융상품을 무기로 국내시장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경쟁력 열위에 있는 국내 금융회사들은 자신의 시장이 잠식되는 것에 대응해 자칫 과도한 수익률 경쟁을 펼칠 경우 또 다시 부실화될 수 있다.

우리의 금융산업 규모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와 비교할 때 상당한 수준이지만 그 경쟁력은 매우 취약하다. 이번 한·미 FTA에 따른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금융회사의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먼저 과거와 같이 단순한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수익을 중시하는 영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금융시장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이에 따라 각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양(量)에서 질(質)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다양하고 변덕스런 고객의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객 차별화 정책을 강화하고,이에 기초한 적절한 가격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다. 장기간의 고객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고객 세분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 셋째 투자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신상품 개발 능력을 제고하는 한편 고객에 대한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인 위험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데이터웨어하우스(DW)의 구축이 시급하고,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겸비한 금융 인력의 확충도 절실하다.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다. 제조업이 한계를 나타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을 통해 금융산업을 21세기 주력산업으로 육성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 금융회사들이 잘 어우러져 경쟁해가지 못할 경우 우리의 동북아금융허브도 그만큼 멀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