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道永 < 서울시립대 교수ㆍ도시사회학 >

17일 낮까지만 해도 이 사건은 한국에서 1면 톱이 아니었다.

사건이 발생한 16일 오전,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강의실에 들어가 교수와 학생들을 무차별 난사해 무려 30여명을 죽였다.

미국 캠퍼스 총기난사 사건 중 최악의 것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미국사회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 외교부는 한국 교민 중 피해자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인 학생이 1000여명이나 공부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다행히' 한인 학생 한 명이 팔에 총알이 스치는 정도로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보도됐다.

18일 새벽 배달된 대부분 신문의 만평은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그나마 이것을 소재로 삼은 일부 만평에서는 사건을 희화화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미국이 속으로 곯은 나라임을 이죽거리고 조소하는 분위기.미국과 FTA타결안을 발표했는데,알고 보니 미국은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하는 부실 투성이인 나라라는 어조가 담겨 있었다.

이라크 파병 같은 것은 그만하고 집안의 폭력이나 제대로 관리하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냉소적인 반미감정의 일부가 엿보였다.

만평 원고가 작성될 때만 해도 자세한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18일 아침 한국 언론은 사실상 발칵 뒤집혔다.

지난 이틀 동안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희생자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 제목의 인터넷 사이트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외교통상부는 전날 밤 심야 비상회의를 가졌고,이어 한국 대통령은 조의(弔意)와 함께 유감 성명을 내보냈다.

사건은 이제 대단히 중요해졌다.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기보다는 그 범인이 바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죄의식과 자성,공동체적 속죄의식은 아니었다.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것이 알려짐으로 인해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더 넓게는 전 세계로부터 부정적인 인식을 얻게 될 것에 대한 염려가 핵심이었다.

인터넷 언론 기사제목은 "한반도 충격,교민사회 패닉,정부 비상회의" 등으로 채워졌다.

한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보복성 폭력이 우려되기 시작했다. 한인단체들에서는 비상 대책회의가 열렸고,일부 학생회에서는 미국인들의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모임이 결성되었다. 미국 유학생들은 이제 전부 보따리 싸고 귀국해야 하는가.

코리아 타운 상가들은 이제 문 닫는 것이 아닌가.

LA폭동 때 같은 보복성 대형 사태 가능성은?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全) 미국 공관 및 한인 사회와 긴밀히 대책 마련 중임을 발표했다.

나는 두렵다.

특히 이 사건에 대해 보이는 한국인들의 반응이 경악스럽다.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 사건은 '강 건너 불'이요 '냉소적인 미국 비판'의 재료였을 뿐이다.

범인이 알려진 후 이 사건은 '국가적' 혹은 '민족적' 단위의 사건이 되었다.

문제는 외국인들의 보복으로부터 어떻게 '방어'하느냐는 것이었다.

그에 근거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나는 한인들이 미국에서 받을지도 모르는 피해와 부정적 시선이 크게 두렵지 않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종족 사회 미국은 지금 자신들의 시스템을 자성한다.

나는 그보다 미국인들이 또는 세계인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인들 전체'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사고 틀이 두렵다.

만약 한국에서 어느 외국인이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면 어땠을까? 그 범인이 속한 민족 커뮤니티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힘들지 않을까.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내에 들어와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이 더욱 경직화되고 의심과 위험의 눈초리가 가해질 것을 두려워한다.

멀리 보낸 내 자식의 안녕을 걱정하면서,내 집 안의 다른 집 자식을 더욱 의심하고 비난할 준비가 된 그 시선이 소름끼친다.

개인과 집단과 시스템을 구분하지 않는 종족집단적 사고의 틀.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모든 나라로 흩어져 살고 있는 글로벌 디아스포라(이민) 시대 한국의 진정한 위기는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