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국가 기간산업이나 첨단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이미 강력한 보호막을 치고 있다.

세계화로 무역장벽이 낮아지고 국가 간(크로스오버) M&A 시장도 커지고 있지만 자국의 이해가 민감하게 걸린 산업에 대해서는 '안보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하고 있는 것.

미국이 198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엑슨-플로리오(Exon-Florio)법이 대표적이다.

1986년 일본 후지쓰의 미국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 인수 시도를 계기로 도입된 이 법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영향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업종에 상관없이 외국 기업의 M&A를 금지할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90년 중국 국영기업의 맴코(미국 우주산업 부품업체) 인수를 무산시킨 사례가 유명하다.

외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 법의 적용 기준이 모호한 데다 다른 나라에는 개방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국의 문은 꽁꽁 닫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9·11 사태 이후에는 외국 자본에 대한 반감이 더 커졌다.

굳이 엑슨-플로리오법을 적용하지 않고도 의회의 압력으로 M&A를 무산시키고 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2005년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다 의회의 반발에 밀려 포기했고 아랍에미리트(UAE) 국영기업 두바이포트월드는 지난해 미국의 주요 항만운영권을 인수하려다 두 손을 들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회사에 팔렸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05년 황금주(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 도입 등을 골자로 한 'M&A 방어 지침'을 마련했다.

이어 최근에는 외국 기업의 M&A 계획을 심사한 뒤 계획 변경이나 중지를 권고 또는 명령할 수 있는 업종 범위를 항공기 무기 원자력 우주개발 관련 업종 외에 공작기계 등 하이테크 소재로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일본게이단렌은 한술 더 떠 '일본 경제와 안전보장에 영향을 주는 생산설비를 가진 기업'으로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럽은 전통적인 보호주의 색채가 강해 '경제 민족주의' 바람이 어느 곳보다 드세다.

프랑스는 외국 기업이 국방 철강 에너지 등 11개 전략산업에 대해 M&A를 시도할 경우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들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산업이 외국 기업의 손에 넘어가면 결국 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