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미국이 모든 종류의 경제적 랭킹에서 1등 자리를 뺏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추세는 느리게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확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과 달러화는 중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선호하는 통화지만 기업과 가정에서 달러는 더 이상 가장 인기 있는 돈이 아니다.

유로 지폐와 동전이 달러보다 더 많이 유통되고 있다.

국제 채권시장에서 유로화는 달러화를 제치고 1위 자리로 올라섰다.

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액이 달러화 표시 채권 발행액을 2년째 앞지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증시의 시가총액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증시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금융시장의 상징인 뉴욕 월가가 유럽 금융센터인 런던 더 시티에 여러 부문에서 1위 자리를 넘겨주고 있는 것도 대표적인 예다.

작년 기업공개(IPO) 규모는 런던이 489억달러,뉴욕이 336억달러를 기록했다.

외국 주식 거래 비중은 런던 44%,뉴욕 31%로 런던이 더 국제화된 증시라 할 수 있다.

세계 외환거래 점유율도 런던이 32%를 점하고 있고 뉴욕은 18%에 불과하다.

물론 뉴욕은 시가총액 면에서 런던의 다섯 배에 달하지만 그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경제잡지 포천은 미국의 엑슨모빌이 2006년 세계 최대 기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비상장 기업까지 포함하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수입이 더 크다.

유럽이 몇 가지 경제 성적표에서 미국을 추월한 것은 달러화 약세가 큰 원인 중 하나다.

따라서 이는 언제든 다시 뒤집힐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보다 더 큰 위협은 미국보다 세 배나 더 빨리 성장하는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는 2027년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중국이 불과 4년 안에 '넘버원'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과거 세계 최대 수출국이었다.

이 지위는 처음 독일에 빼앗겼다.

이어 작년 하반기 수출에선 중국에 다시 밀렸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중국의 수출액은 5406억달러로 미국(5310억달러)을 제치고 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WTO는 중국의 작년 수출 증가율이 27%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으며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올 한 해 미국을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작년 처음으로 미국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다.

올해 미국 제너럴모터스는 일본 도요타에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라는 왕좌를 빼앗길 전망이다.

프랑스 석학인 자크 아탈리도 신간 '미래의 물결'에서 "2025년 무렵 미국은 제국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후 일레븐이라 불리는 11대 강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영주로 급부상한다.

한국도 그 중 한 나라다"라고 전망했다.

물론 자랑할 바는 못 되지만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고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감옥에 수감된 인구도 가장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1위 자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위를 유지하면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국제적인 표준을 만드는 데 발언권이 높아진다.

기축통화를 발행하기 때문에 미국은 싼 값에 자금을 세계 각지에서 빌려올 수 있다.

또 1위가 능사가 아니라 절대적인 성장률을 극대화하는 정책 목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리그에서 1등 자리를 놓치는 것은 스포츠에서 지는 것과는 다르다며 경제적 경쟁은 제로섬 게임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다른 신흥 경제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은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치는 게 아니고 혜택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등 자리를 빼앗겼다고 초조해진 미국이 어리석게도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 성장도 좀먹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계적인 침체 속의 '넘버원'보다는 급성장하는 세계 속의 '넘버투'가 나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제안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