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발전할수록 상품의 종류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어떤 경제학자는 상품의 종류가 많고 적음을 가지고 선진경제와 후진경제로 나누기도 한다. 우유 하나만 해도 특정 성분의 구성비율에 따라 그 종류가 훨씬 많아질 수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로서는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 만약 우리나라 대학을 '숫자'가 아닌 '상품의 종류'로 구분하면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이렇게 말하면 국립대와 사립대 등 태생적 분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택할 만한 상품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정작 그 가지 수가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다. 그게 그것 같은 유사 상품들이 너무나 많다.

되돌아 보면 대학이라는 상품의 다양성 측면에서 의미있는 실험들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한국과학원(오늘날 KAIST)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도입됐다. 정부 주도의 실험이었다. 또 하나는 포항공대의 설립이다. 이는 포스코가 주도했다. 이런 실험들은 한국 대학사회에 하나의 충격을 던졌다. 특히 당시 안주하던 서울대에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부와 기업이 실험을 도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대학 주도의 실험은 어떤가. 여기에 이르면 독자들 머리 속에 한동대가 떠오를지 모른다. 대학 주도의 성공적 실험의 하나다. 한동대는 교육에 승부를 걸었다. 교육부가 대학을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으로 분류할 때 한동대는 기꺼이 교육중심 대학을 택하겠다고 했다. 거의 모든 대학이 연구중심 대학을 하겠다고 나섰던 상황에서였다. 이는 적중했다.

연구중심 대학 KAIST도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서남표 총장이 부임하면서 실험에 탄력이 붙은 것 같다.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영년직(tenure) 심사시기를 임용 후 8년 이내로 제한(평균 6년 10개월 단축)한 것은 과감한 실험이다. 연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권 차입을 시도한 것도 신선하다. 그러나 서 총장은 더 도전적인 실험에 목말라하는 눈치다.

이런 실험들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국내 대학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육부는 KAIST와 한동대 같은 실험을 왜 시도하지 않느냐고 대학을 다그칠 게 아니라,어떻게 하면 그런 실험이 보다 용이하게 일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충분한 실험이 그 전제조건이다. 대학이라고 다를 게 없다.

덴마크의 인재전략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등 보다 큰 나라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곁에 두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속속 발효되면 개방과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게 분명하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인재전략은 무엇인가. 그리고 여기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지금 정부와 대학 간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3불(不)정책(본고사 금지,고교등급제 금지,기여입학제 금지)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해답을 못 찾을 이유가 없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그리고 학생 선발은 대학으로서는 엄연한 투자다. 교육부는 외국 대학들에도 3불정책을 강요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라. 대학이 원하면 말 그대로 '파괴적 실험'도 가능해야 한다. 규제를 풀어야 대학이 산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