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景烈 <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원장 krryoo@rist.re.kr >

포스코에서 경영혁신(PI) 업무를 담당했을 때의 일이다.

회사의 모든 업무를 디지털화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투지만으로 시작했었다.

우리는 '혁신' 하면 외부의 컨설턴트나 혁신 전문가를 떠올린다.

물론 포스코에도 세계적으로 저명한 컨설턴트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출범 후 얼마 되지 않아 임원 워크숍이 있었다.

한 임원이 "그런데 PI는 왜 하는 겁니까?" 란 질문을 던졌다.

컨설턴트를 쳐다봤다.

그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듯 나에게로 답변을 넘겼다.

뭐라 답변하긴 한 것 같은데 제대로 못 했던 것 같다.

그날 조금 늦게 도착하신 회장님의 PI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도 곤혹스런 순간이었다.

부끄러웠다.

반성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혁신의 필요성은 컨설턴트의 몫이 아니었다.

컨설턴트는 단지 혁신의 방법론만을 조언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혁신의 필요성을 우리 손으로 직접 찾기로 했다.

부서별 회의를 통해 혁신이 필요한 과제를 스스로 찾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부문별로 모여 찾아낸 과제들에 대해 그 필요성 여부를 토론해 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 단계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토론 과정에서 혁신이 꼭 필요한 일들은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얻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아이템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최종 36개 과제가 확정됐고 전 임원들이 한두 개씩 맡아 실행하기로 했다.

결국 포스코 2만여 직원들 모두가 PI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최근 웰빙이 유행이다.

그러나 웰빙에 맞춰 주부가 아무리 정성스럽게 건강 식단을 차린다 해도 아이들이 입맛에 안 맞는다 하고,부모들이 씹기 불편해 안 드시면 결코 웰빙은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건강식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공감할 때만이 가정 또한 웰빙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가정,직장 할 것 없이 진정한 혁신의 힘은 역시 내부의 공감대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