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케이블방송 시장은 '지각 변동'이라고 할 만한 변화를 맞게 됐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기존과 같이 49%로 제한됐으나 간접 투자는 100% 개방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국내 PP에 대한 외국인 간접 투자를 100% 개방했다는 것은 외국인이 100% 투자한 법인도 국내 법인으로 보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미국의 미디어그룹이 국내에 100% 지분을 투자해 법인을 세운 뒤 이 법인을 통해 국내 PP의 지분 100%를 가질 수 있어 사실상 미국에 100% 개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PP의 외국인 개방은 유예 기간 3년에 비준 이후 발효까지 걸리는 2년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 5년 이후에는 타임워너와 디즈니,뉴스콥 등 미국 미디어 기업이 국내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영세한 국내 PP들은 콘텐츠 경쟁력 및 자본력에서 월등한 미국의 메이저 방송사업자와 무한 경쟁을 펼쳐야 할 처지가 됐다.


국내 PP들이 최근 들어 자체 제작 역량을 늘리고 있지만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고 주요 프로그램도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클 전망이다.

미국 자본이 직접 PP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PP들에 콘텐츠를 판매하지 않거나 팔더라도 가격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외 콘텐츠 가격이 높아지면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자금력에서 열세인 국내 PP의 자체 제작이 더 힘들어져 미국 메이저 콘텐츠 제작사의 2차 유통 창구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미국 미디어 기업들의 방송 분야 매출액 규모는 73조원으로 한국의 7조7000억원에 비해 거의 10배가량이나 많아 손쉽게 지배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외국 방송프로그램 편성 쿼터 완화로 콘텐츠 수입도 늘어나게 됐다.

이번에 PP들의 국산 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을 영화의 경우 현행 25%에서 20%로,애니메이션은 35%에서 30%로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케이블 TV 업계는 전체 프로그램 수입 중 미국 콘텐츠 비중이 67.6%인 데 반해 전체 콘텐츠 수출 중 미국 시장의 비중은 1.7%에 불과할 정도로 지금도 심각한 불균형 상태라면서 이 같은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편성 쿼터에 제한을 두는 제도는 다양한 장르의 문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데 이 장치를 정부 스스로 해제했다는 것이다.

다만 국산 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은 지상파 방송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케이블TV 비상대책위원회는 협상 타결과 관련,"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소유 지분을 100% 내준다면 국내 방송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방송시장 개방을 저지하고 방송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외국 채널의 우리말 더빙 허용 여부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불허를 유지하기로 확정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