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했어야 했나요? 우리 집에는 한번도 단속을 나온 적이 없는데…."

지난 23일 저녁,서울 마포의 A 대형 음식점 사장은 "한우고기만을 내놓고 있지만 메뉴판에 원산지를 표시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영업하고 있는 이 음식점은 근처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유명 식당이다.

서울 명동의 B음식점은 호주산 수입 고기를 팔고 있지만 역시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음식점 사장은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수입 고기에 대한 고객들의 저항감 때문에 표시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은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명동 세 곳과 마포 세 곳의 한우집을 취재했지만,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한 음식점은 한 곳도 없었다.

◆수입산 먹고 한우값 낸다?

올 1월1일부터 바른 쇠고기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행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겉돌고 있다.

시행 3개월째를 맞았지만,담당 기관의 관리 소홀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것.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식당들은 대부분 한우 기준으로 고기값을 받고 있어 음식점에 따라서는 수입산 쇠고기를 쓰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업면적 300㎡(90평) 이상인 한우집의 경우 한우 등심 200g은 평균 3만원,한우 갈비(200g)는 2만5000원에 팔고 있다.

하지만 수입산 고기를 쓸 경우 가격이 이보다 7000∼8000원 낮아야 정상이다.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적용 대상 음식점은 △한우 △젖소 △육우 등 쇠고기 종류와 원산지,중량,가격을 명확히 메뉴판이나 음식점 내 팻말,벽면 포스터 등에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표시해야 한다.

6개월 이상 사육된 수입 생우도 '등심,국내산(육우,호주)'처럼 수입 국가명,식육 종류를 모두 표시해야 한다.

대신 구이가 아닌 생육으로 먹는 육회,갈비찜,갈비탕,꼬리곰탕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 강남 C 한우 음식점 관계자는 "강남 대형 식당들 중에는 수입산 고기를 파는 집이 적지 않다"며 "그런데도 이들 식당이 한우 기준으로 음식값을 받고 있어 전반적인 한우값 거품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원산지 표시제,누가 아나?

서울 마포구청의 위생과는 마포구 78곳의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대상 업소를 직원 혼자 처리하고 있다.

위생과 담당자는 "아직 홍보 계도 기간이라 한 차례 원산지 표시제에 대한 공문만 보냈을 뿐"이라며 "점주들이 알아서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포 일대를 돌아본 결과 공문은커녕 전화 한통 받은 적이 없다는 가게가 수두룩했다.

서울 중구청의 상황은 더 욱 심각했다.

식품위생팀 총 4명이 중구 내 지역을 나눠 관리하고 있지만,어떤 담당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 대상 업소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품위생팀의 한 관계자는 "대략 한 사람당 30곳을 맡고 있는데,업종이 자주 바뀌어 정확한 업소 파악이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일반 음식점 수는 57만여곳.식품위생법에 따라 원산지 표시 대상으로 지정된 곳은 4300곳,서울시내 표시 대상 업소는 1400여곳이다.

최기호 보건복지부 식품정책팀 사무관은 "최소 1∼2년은 지나야 제도가 정착될 전망"이라며 "이달 말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청,지자체 등과 함께 집중 단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 소비자 값은 계속 하락

한편 쇠고기 산지 거래 가격과 소비자 가격은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25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한우(600㎏·수소)의 산지 평균 거래 가격은 530만원으로 지난달과 지난해 같은 날에 비해 각각 3%,6% 떨어졌다.

농협중앙회가 지난해 4월부터 실시한 한우 전국 소비자 판매 가격 조사에서도 지난달 한우 등심(1등급·500g) 평균 소비자 판매가격이 3만6308원으로 전달에 비해 3%가량 낮아졌다.

이르면 2∼3개월 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한우 수요가 줄고 있어서다.

명태훈 농협중앙회 축산팀 과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임박설로 산지 거래 가격이 지난해 동기 대비 10∼15%가량 떨어졌다"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