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튀크베어 감독의 '향수'는 마치 냄새의 박물관 같다.

내장을 뒤집을 정도로 메스꺼워지는 악취에서부터 영혼을 잠식할 만큼 아찔한 향기까지 온갖 냄새로 가득하다.

스크린의 시각적인 속성을 이처럼 절묘하게 후각으로 펼쳐낸 작품은 드물다.

특히 이성을 마비시키는 냄새의 위력을 보여주는 절정부가 압권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을 옮긴 이 작품은 한마디로 '냄새의 마력'에 관한 영화다.

"냄새는 시각이나 청각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고 간파한 키플링의 통찰이 곳곳에 번득인다.

18세기 프랑스의 한 생선시장에서 태어난 직후 버려져 빈민굴에서 자란 청년 장(벤 위쇼)은 온갖 사물을 냄새로 식별해내는 후각의 천재.그는 뛰어난 향수를 만들게 되지만 여인의 향기에 전율을 느낀 뒤 지상 최고의 '여인향수'를 만들기로 작정한다.

꽃에서 향유를 모으듯,아름다운 처녀를 죽인 뒤 시신에서 향기로운 육즙을 채취하는 것이다.

영화는 향기가 영혼을 마비시키는 최음제란 사실을 충격적으로 제시한다.

악취를 내는 풍경들과 대비돼 향기의 위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카메라가 생선내장과 탯줄,배설물,빈민굴과 염색공장 등을 클로즈업할 때는 스멀거리거나 역겹다.

반면 향수와 화장품,장미정원 등이 포착되는 순간에는 아찔할 만큼 향기롭다.

아름다운 처녀의 향기를 맡는 장의 모습은 관객들을 황홀경으로 이끈다.

그렇지만 향기가 이성을 마비시켜 광기로 치닫게 되는 장면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최음제로 사용됐던 사향고양이 분비액을 향수로 만들기 위해 산 고양이를 증류관에 넣고 끓이거나,여인의 시신에서 털을 깎고 육즙을 채취하는 장면은 경악할 정도다.

살인죄로 처형대에 선 장이 '여인향수'를 뿌리자 군중이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집단섹스에 돌입하는 절정부는 사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

향기는 수수께끼이자 권력이고,성스러움이란 주제를 부각시키려고 리얼리티를 희생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에피소드는 냄새의 속성을 드러내는 데 전력 투구하고 있다.

살인장면들도 의도적으로 끔찍하지 않게 처리됐다.

여인의 시신들은 훼손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아름답고 향기를 발산하는 듯하다.

22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