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공기업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4명의 사장 후보를 놓고 위원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서류 및 면접 전형을 모두 치렀지만 후보들의 수준이 엇비슷했던 것.결국 위원회는 헤드헌팅 업체에 이들 후보에 대한 '평판 조회(reference check)'를 의뢰했다.

조회 결과 일반 기업 임원 출신인 A후보는 전 직장에서 인사의 공정성 문제로 내부 불만이 많았다.

금융회사 임원을 지낸 B후보는 오히려 너무 사람이 좋은 게 탈이었다.

술자리 스킨십 등 조직 인화에는 뛰어났지만 신상필벌이나 강력한 업무 추진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공기관 임원 출신인 C후보는 과도한 카리스마가 되레 발목을 잡았다.

기획력,추진력 등이 탁월했음에도 부하 직원들이 소화하기 힘든 과제를 끊임없이 던져 내부의 반발과 피로감이 심했던 것.반면 D후보는 위아래 구분없이 존중하는 태도가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인맥이 넓어 정보 수집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플러스로 작용했다.

결국 D후보가 사장으로 낙점됐다.

민간 기업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근 한 대기업 계열 건설사 임원직의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김모씨(50).사장 면접까지 무사히 통과했지만 한 HR컨설팅 업체가 실시한 평판 조회를 통해 두 번 이혼한 경력이 드러났다.

김씨는 그 뒤 이혼 사유에 대해 나름대로 충분히 소명했지만 회사 측은 그의 채용을 포기했다.

최근 들어 평판 조회가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직 채용에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핵심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할 때는 물론 조직 내부의 전략적 승진 인사 때도 사실상 '필수' 절차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평판 조회는 단순한 이력서나 면접상의 사실 확인 정도에 그쳤지만 이제는 후보자의 실무능력,인성,인맥 등 전방위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음주운전 전력만 있어도 승진 대상에서 탈락시키는 이른바 '청와대식 평판 조회'와 같은 맥락이다.

평판 조회가 급부상한 것은 서류 검토와 30분~1시간 정도의 면접만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제대로 판별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기업의 윤리 경영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헤드헌팅 업체인 커리어케어의 서혜진 차장은 "평판은 개인의 실무능력,리더십,도덕성 등 총체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며 "최근에는 면접도 하기 전에 평판 조회부터 의뢰하는 회사도 많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헤드헌팅 업체에 평판 조회만을 따로 의뢰하기도 한다.

고도의 정밀도와 객관성을 요구하는 CEO 등 최고위층에 대한 평판 조회는 건당 서비스 대행료만 수백만원에 달할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외국계 회사의 경우 판공비를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확인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며 "각종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조사 방식은 마치 사립탐정을 방불케 한다"고 귀띔했다.

물론 일부 업체의 경우 이성문제 등 은밀한 부분까지 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생활 침해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최규호 법무법인 세광 변호사는 "아직 소송까지 간 사례는 없지만 채용을 위해 여자관계 등 구체적인 사생활까지 조사한다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들은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평판 조회는 이제 뚜렷한 추세"라며 "앞으로 기업 고위급 임원이 되려면 평판 조회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이관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