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제국 로마의 성공적인 국가경영에는 효과적인 리더 양성시스템이 핵심 역할을 했다. 로마인들은 리더를 양성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질을 관념적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체험에 기반한 통솔력과 추진력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로마는 왕정(王政)과 공화정(共和政)을 거치면서 단계별 인재양성 시스템을 확립했다.
로마에서 인재들은 현실경험을 통해 실용적 사고를 지닌 리더로 성장해 나갔으며,현실과 유리(遊離)된 관념론에 빠져든 선동가가 행운으로 지도자가 되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것을 최소화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로마의 지도자들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도자에게 현장경험을 요구하는 공화정 로마의 전통에 따라 미래의 리더는 군복무로 사회경력을 시작해 최전방의 로마군단에서 고위장교로 복무하면서 자질을 검증받고 리더십을 익힌다. 군 복무를 마친 20대 후반에는 20명을 선발하는 회계감사관에 출마한다.
이 과정에서 군대에서 지휘관으로 쌓은 평판과 실적은 당락(當落)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당선되면 후방에서 금전-출납관리를 담당하거나 로마군단에서 병참-보급장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효율적 재정운영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다음 단계는 법무관이다. 수도 로마에서 민생치안과 사법재판을 담당하면서 공정한 법집행의 최전선에 서게 되고 법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통상 법무관을 마쳐야만 로마 군단장이나 식민지 총독과 같은 일선 지휘관의 임무를 부여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집정관 출마는 40세 이상으로 단계별 경력을 성공적으로 쌓아야만 가능했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대기업인 GE가 'CEO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CEO급 인재들을 배출하는 배경에는 로마와 유사한 단계적 인재양성 프로그램이 있었다. GE는 1970년대 초부터 단계적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해 왔다. 리더의 성장과정을 '초급관리자-중간관리자-영역전담관리자-사업총괄관리자-그룹관리자-기업관리자'의 여섯 단계로 나누고,각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면서 CEO로 성장해 나가는 경로를 설계한 것이다. GE의 전(前) CEO였던 잭 웰치가 후임으로 외부의 거물급 경영자를 영입하지 않고 GE에서만 경력을 쌓은 45세의 제프리 이멜트를 지명한 것도 이러한 프로그램의 성과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시대라는 격랑에 맞닥뜨린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이를 앞서서 헤쳐나갈 미래형 조타수(操舵手)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각 사회분야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상응하는 리더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며,리더십 빈곤의 해소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다. 그러나 역량 있는 리더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땅에서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간과해 왔던 미래 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全) 주기적 시스템의 필요성이 커진다. 체계적인 리더 육성 과정이 없는 조직에서 리더 교체는 도박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권력에 빌붙어 이익을 얻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관성 때문에 저급한 리더라도 교체하기는 쉽지 않고 그 부담은 조직 전체가 고스란히 지게 된다.
조직은 곧 사람이다.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 체계적인 성장경로를 만들어 주고,단계별로 인적자원을 검증해 나가는 조직은 번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선량한 관리자는 풍부하지만 비전과 추진력을 갖춘 리더는 부족하다. 사회적으로도 말만 많은 지식인과 목청 높이는 선동가는 넘쳐나지만 현실문제 해결능력과 미래 비전을 겸비한 지도자는 기근상태다.
과거처럼 권위와 명령에만 의존해서는 날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환경에서 조직역량을 높이고 공동체의 생존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은 절감하고 있다. 미래 리더를 키워내는 데 있어 현장경험을 중시하고 단계별로 육성해 낸 로마의 인재양성 시스템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벤치마킹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