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미국 여성 요리사·레스토랑업자협회는 영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에게 공석인 백악관 주방장에 여성을 선임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몇 달 뒤인 8월 백악관은 부주방장이던 여성 요리사 크리스테타 커머필드씨를 주방장으로 승진,발령했다. 백악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주방장이 탄생된 것이다.

1997년 매들린 울브라이트가 미국의 첫 여성 국무장관에 오르고 8년이나 더 지난 뒤였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선 통산 네 번째 여성 요리 명장이 나오는 데 56년이 걸렸다고 한다. 엊그제 '미슐랭 가이드'의 별 3개짜리 최고요리사 중 한 사람으로 안 소피 피크가 뽑혔는데 이게 1951년 이후 처음이라는 얘기다.

조리(調理) 하면 으레 여성의 일로 치부되는 데도 불구,여성의 요리사 입신(立身)은 장관 되기보다 힘든 셈이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규모 식당은 모르지만 특급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대형음식점 주방은 온통 남성 차지다. 이처럼 직업요리사 세계에서 여성이 밀리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지구력과 체력 부족이 꼽힌다.

차근차근 배워가야 하는 일의 성격상 시작단계에선 궂은 일을 감내하고 밤 늦게까지 버텨야 하는데 여성들은 이런 고된 과정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는 해석이다. 게다가 주방을 장악하자면 요리솜씨는 물론 재료 구입과 직원 통솔 등에서도 뛰어나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고도 한다.

얼마 전 내한했던 프랑스 요리 명장 피에르 가니에르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훌륭한 요리사,좋은 식당 운영자가 되려면 스태프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주방은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전쟁터와 같아 요리솜씨 못지 않게 호흡이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급 레스토랑의 생명인 맛과 서비스의 일관성 유지가 가능하다는 조언이다. 그는 또 식당 개업 이래 30년 동안 맛과 신실함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를 개발했다고 털어놨다. 요식업의 1년 이내 폐업 신고율이 32.9%라는 마당이다. 여성 요리사와 함께 식당 운영자들도 기억했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