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조만간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방향으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진 것은 여당이 처한 현실과 임기말 국정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황에서 "노대통령이 당적 정리문제에 대해 최종 숙고중이며, 조만간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탈당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이며, 다만 시점과 그 형식에 대한 최종 단안만 남았다는 설명이었다.

청와대 내부 분위기로는 노 대통령의 탈당 시점은 2월 임시국회 회기(3월6일 종료)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노 대통령이 탈당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참여정부 4주년인 오는 25일로 퇴임을 1년 앞두게 되는 시점에서, 이를 전후해 여당 당적을 정리하는 것이 통합신당으로 활로를 모색하려는 여당과 초당적 협조를 바탕으로 임기말 미래과제 해결에 진력하려는 대통령 자신에게 모두 도움이 될 것이란 결론에 이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남은 1년간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공정히 관리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탈당 문제에 대해 개헌안 발의, 여당 내부 문제 등을 전제로 했던 '조건부 탈당'에서 '조기 탈당' 쪽으로 급선회한 것에 이런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여당의 진로문제를 놓고 적잖이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당적 보유가 여전히 통합신당 논의의 변수가 되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열린우리당이 분당에 버금가는 대규모 탈당의 고통 속에서 새롭게 출발한 현 시점에서 여전히 자신이 여당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 고민의 핵심이었고, 결국 당의 활로를 터주자는 차원에서 탈당을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쟁점화된 개헌문제도 대통령의 탈당 결심을 굳히게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탈당 문제에 대해 여당의 통합신당 논의에 걸림돌이 되거나 야당이 4년 연임제로의 개헌논의 수용을 전제로 요구할 경우에 한해 탈당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야당, 특히 한나라당이 개헌논의 자체를 거부하면서 탈당의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무의미해졌고,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이 개헌을 명분으로 탈당하면 개헌제안이 정략적 의도라는 야당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럴 바에는 개헌 발의에 앞서 탈당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제 때 하자"는 개헌 제안의 진정성을 높이고 한나라당의 반대 명분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해석을 떠나 좀더 멀리 보면 노 대통령의 탈당은 안정적 국정 마무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현재 노 대통령 앞에는 개헌안을 비롯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과 부동산시장 안정, 전시작통권 환수, 사법개혁 완수, 방송통신 융합, 보험.연금 개혁, 중장기 국가재정계획인 '비전 2030' 구체화 등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다.

최근 6자회담에서 9.19 성명의 초기이행 조치 합의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도 임기 1년을 남기고 남북관계에서 확고한 평화의 틀을 구축해야 하는 노 대통령에게 새롭게 던져진 과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하나 같이 원내 1당인 한나라당 등 야당의 초당적 협력 없이는 추진이 어려운 과제들이란 점이다.

이들 과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임기내 해결이 가능하다"며 "다음 정부에 어떤 후유증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고,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당파를 초월해 중립적 위치에 서는 것은 이들 과제의 원활한 추진을 담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의 조기 탈당이 임기말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국정장악력 저하를 가져오고, 나아가 '미래과제'로 내건 임기말 주요 과제의 추진동력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청와대내에서 조기 탈당론에 부정적인 입장이 없지 않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경우 전임자들과 달리 당정분리 원칙을 견지해온 데다 측근비리 등 도덕성 문제에서 자유롭고 임기 시작부터 검찰 등 권력기관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정누수의 정도가 미미할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그 연장선에서 노 대통령이 정치 분야에서 거둔 이러한 성과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탈당을 결행하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여당발(發) 정계개편의 격랑에 휩쓸려 외부의 요구에 마지못해 나가는 인상을 주느니 여당의 돌파구를 열고 당면한 국정과제를 과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탈당을 결심한 것이란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