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 측과 병원 측이 벌이는 긴박한 의료소송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화제의 드라마 '하얀거탑'. 하지만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적지않은 논리적·의학적 오류들을 지적해낸다.

아무래도 원작인 1960년대 일본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해서인지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현실 속의 의료소송을 비교,허와 실을 살펴본다.


◆의료소송은 의료전문변호사의 몫

천재 외과의사인 장준혁(김명민 분)은 자신이 집도한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아 환자가 수술 후 갑자기 사망,소송에 휘말렸다.

내과의사이자 친구인 최도영(이선균 분)이 환자를 외과로 넘기면서 췌장암 세포가 폐까지 전이됐을지도 모른다며 검사를 더 해보라고 충고했지만 장준혁은 이를 무시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한 외부활동으로 병세가 날로 악화되는 환자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것.결국 오진에 부실한 치료가 겹쳐 환자가 사망하자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며 부검을 한 후 인권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의학분야에 대한 정보부족과 병원측의 호화 변호인단 앞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 같은 드라마 속 의료소송의 모습에 대해 전문 변호사들은 우선 상황설정 자체가 "수십 년 전에나 있을 법하다"고 지적한다.

드라마에서는 의학지식이 없는 인권변호사(손병호 분)와 시민운동을 하는 젊은 여성(송선미 분)이 문제해결에 나서지만 요즘은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소송 준비기간만 6개월 이상

증인확보가 사건해결의 키나 되는 것처럼 인권변호사가 증인찾기에 동분서주하는 장면은 한참 잘못됐다.

의료소송의 승패는 증언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기록에 따라 판가름난다.

진료기록상 미기재나 오진으로 인해 잘못된 진단이나 처방을 내렸다면 해당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히포크라의 서영현 변호사는 "진료기록은 환자치료에 관한 내용을 보여주는 기초적인 자료로 과실을 저지른 의사 입장에서는 진료기록 변조의 유혹도 생길 수 있어 가능한 한 빨리 진료기록을 입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의료소송에선 '감정'(鑑定)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현실과 차이나는 점도 아쉽다는 지적이다.

감정은 기본적인 진료기록 해독이 끝나 공방이 시작되면 법원에서 의료기관이나 대한의사협회 같은 곳을 선정,해당 처방이나 진단이 옳았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을 의뢰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감정에만 보통 6개월 이상 소요되고 의료소송은 1심판결이 날 때까지 평균 1년~1년 6개월이 소요되는 현실도 드라마와 다른 점이다.

신헌준.조용국 변호사는 "일반 민사사건은 수임하게 되면 수일 만에 바로 소장을 쓸 수 있지만 의료소송은 진료기록을 받아서 이를 해독한 뒤에 과실부분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소송 준비에만 6개월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한편 드라마에서 의사에 대한 형사고소는 무혐의로 끝날 수 있어 포기하고 민사소송만 하자는 변호사 조언이 나오는데 이는 현실과 유사하다.

전문의 출신인 김연희 변호사는 "모든 사고가 의사만의 잘못으로 책임지워지지 않는 의료행위의 특성상 의료소송에선 전부 승소가 없다"며 "말기암 환자를 다룬 드라마의 경우에도 의사가 많아야 20~30% 정도,대부분의 경우 그 이하로 책임이 인정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폐생검은 내과의사가

전문가들은 췌장암 세포가 폐까지 옮겨갔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폐생검(질환이 발생한 폐의 조직을 직접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위해 폐 조직의 일부를 떼어내는 검사) 미실시로 인한 환자 사망의 책임을 전적으로 장준혁에게 돌릴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드라마에서도 일부 가능성을 열어놓긴 했지만 폐생검은 외과가 아니라 내과에서 한다.

결국 오진의 책임은 드라마 속에서 '진정한 의사'로 그려진 내과의사 최도영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또 환자사망의 직접 원인인 폐색전증(응고된 피가 폐의 혈관을 막아서 발생하는 질환)은 췌장암의 폐전이와 인과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도 없어 현실상에선 소송대상이 되기 어렵다.

다만 드라마에서 장준혁이 레지던트에게 환자를 맡기고 증상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원인을 파악하지 않은 점은 대표적인 의료소송 케이스에 해당한다.

김동욱·김현예·이태훈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