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어디갔지?"

회사원 김호진씨(37ㆍ서울시 노원구 월계동)는 최근 씁쓸한 '낭패'를 겪었다. 임신 중인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한밤중에 군고구마를 사러 나갔다가 무려 2시간이나 헤맨 것. "석계역부터 공릉,중계역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택시비만 날렸다"며 입맛을 다셨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쯤 하나 둘 등장해 계절 별미를 선사했던 겨울철 노점상들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특히 한 겨울 익숙한 풍경인 군고구마 장수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군것질 할 게 많아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푸근해진' 날씨가 큰 영향을 미쳤다. 평년보다 1~2도씩 더운 날이 겨울 내내 이어지면서 군고구마 장수들이 일찍 자리를 접거나 다른 종목으로 갈아 탔기 때문이다.

당장 군고구마기계 제작사에 변화가 나타났다. 대당 15만원(장작용)에서 21만5000원(가스용)인 군고구마 기계를 매년 350여개씩 팔아오던 한국기계MC는 이번 겨울에 300개를 간신히 채웠다. 회사 관계자는 "대개 11월부터 주문이 몰려 12월에 피크를 이루는데,올해는 주문이 시들했다"고 말했다.

반면 옥션이나 노점상 닷컴 등 인터넷 쇼핑몰에는 팔려고 내놓은 중고 군고구마 기계들이 넘쳐난다. 기계 구입 한 달 만에 장터를 찾은 김모씨(32ㆍ서울시 용산구)는 "팔다 남은 군고구마로 세끼를 해결하다시피 하다가 최근 타코야키(문어조각과 야채를 넣은 풀빵)로 종목을 바꾸기 위해 기계를 내놨다"고 말했다.

붕어빵,오뎅,호떡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밀가루 반죽과 앙금 등 노점재료를 할인판매하는 붕어빵닷컴(서울시 황학동) 관계자는 "올 들어 반죽 주문이 대략 10~15%가량 줄어든 것 같다"며 "노점상도 이제는 장기 날씨예보에 신경을 써야 할 모양"이라고 푸념했다.

노점상 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생계형 창업자들을 쫓아내야 하는 마음의 불편은 던 셈이지만,한편으론 푸근했던 겨울철 풍경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