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타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합의문에 핵시설 불능화 시점이 명기되지 않은 데다 핵무기 등 '과거핵' 부분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쥔 형국이다.

북한이 약속이행의 속도를 내면 핵시설 불능화와 에너지 95만t을 맞바꾸는 2단계 협상이 빠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반면 버티기로 나올 경우 협상이 장기표류하는 등 난관에 봉착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핵시설 불능화는 시기가 문제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의지는 보였다"는 게 협상장 안팎의 평가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핵시설을 포기할 가능성은 시설의 낙후한 현실과 관계돼 있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1년간 가동하면 핵무기 1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6kg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극심한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핵연료가 한 차례 가동분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라며 "시설 낙후로 효율도 떨어져 계속 가동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상당한 보상과 맞바꿀 수 있는 핵시설 불능화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문제는 시기다.

데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북한에 휘둘릴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인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는 "이번 협정은 분명 중요한 진보가 있었지만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빠뜨렸다"며 "가장 큰 문제는 핵무기 제거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그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도 "북한은 6자회담에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인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회담의 미국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벌써 부시 행정부 내외의 매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어 차기 미국 정부 역시 이번 합의에 따른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외교부 산하 중국국제학연구소의 북핵 담당자인 진린보는 "북한은 값싸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그래서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테러지원국ㆍ적성국 해소 관건

일본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북한이 미국의 정책전환 의지를 검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과 대적성국 교역법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법률로써 북한과의 무역 및 금융거래를 사실상 금지하고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이 법을 개정하려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만큼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황이다.

◆핵무기 폐기는 험로 예상

북·미 관계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도 기존 핵시설을 포기하는 것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다.

합의문은 신고에 앞서 북한이 60일 내에 대상 목록을 협의하도록 명시했다.

북한은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무기 재료'를 신고 대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핵무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전문이다.

북한은 현재 6~7기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6자회담 합의문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제시하지 않았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박사는 "미국이 법률을 완화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실질적인 제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북한의 핵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한우덕ㆍ베이징=정지영 기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