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유를 제공받았던 과거 합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엿새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13일 채택한 '북핵 폐기를 위한 이행 계획서'에 대해 협상 고위 관계자가 자평한 말이다.

특히 북한이 핵폐기를 이행하는 범위와 속도에 보상 규모를 연계시킨 것이 1994년 제네바 합의와 다르다.

지난달 북·미 간 베를린 회동에서 합의한 것은 '폐쇄·봉인'까지였으나 합의문은 북한의 전면적인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 단계까지 제시,진일보했다.

"목표치 이상을 얻었다"는 게 우리 협상단의 평가다.


◆상응 조치는 '성과급 제도'

협상 고위 관계자는 "상응 조치의 핵심은 성과급 제도"라고 말했다.

북한은 1994년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맺고 5개 핵시설을 폐쇄·봉인하는 '액션'과 "핵을 폐기하겠다"는 '약속'만으로 7년간 매년 50만t씩 중유를 제공받았다.

당시 합의가 정적인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동적인 구조다.

폐쇄·봉인의 대가로는 중유 5만t 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핵프로그램을 모두 신고하고 영변 흑연감속로와 핵재처리시설을 영원히 못쓰게 만드는 불능화 조치까지 취해야 중유 100만t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합의문은 "북한이 신고와 불능화를 완료할 때까지 100만t이 제공된다"고 명시,이행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보상 집행 속도도 빨라진다는 원칙을 담았다.


◆동등 분담 원칙 합의

한때 대북 지원 비용을 한국이 떠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합의문은 한·미·러·중·일 5개국이 "평등과 평형의 원칙에 따라 분담에 참여한다"고 명시했다.

한국 대표단이 분담 원칙을 강하게 요구,중국의 초안을 뒤집으며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분담을 끝내 거부했다.

대신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을 포함한 북한과의 양자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을 경우 참여한다는 조항을 덧붙였다.

북·일 간 양자 문제는 한 달 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실무그룹을 설치해 해결을 모색하게 된다.

협상 고위 당국자는 "일본이 국내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당장 참여하지 못했지만 일본이 동참할 명분을 얻을 수 있게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설득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 형식 다원화

합의문은 5개국이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를 명기하지 않았다.

핵신고와 불능화의 대가가 '중유 100만t(2억8140만달러정도)에 상응하는' 에너지·경제·인도적 지원이라고 정했을 뿐이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답습한다는 국내 비난여론을 우려,중유 제공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북한 주민들이 직접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에너지를 주겠다"는 원칙 아래 풍력발전소 건설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송전,식량 지원 등도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6자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경우 북한에 80억달러의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비용을 분담한다는 원칙은 정해져 있지만 각국은 각자의 지역 발전 계획을 고려하고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지원 방법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