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泰政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이웃집 김씨는 올 여름 휴가를 일본 홋카이도로 갈 계획을 세웠다. 골프는 물론 생선 초밥도 실컷 먹고,돌아오는 길에는 HD 영상이 지원되는 캠코더도 하나 장만할 생각이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공연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국민들은 이에 환호한다. 이런 변화가 단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시장개방 조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 전반에서 '일류(日流)'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과의 문화적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데는 원·엔 환율 하락이라는 경제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외환시장에 고시된 원·엔 환율은 779원으로 원·엔 환율이 본격적인 하락 국면에 접어들기 직전인 2004년 1월 초에 비해 30.6%나 떨어졌다. 엔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높아져 일본 여행이나 일제 자동차를 2004년 초에 비해 30% 낮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원·엔 환율 하락으로 인해 가장 뚜렷이 나타난 한 가지 변화는 2005년을 기점으로 대일(對日) 서비스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대일 서비스수지는 2001년까지 연간 20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보였다. 그러다가 2005년 들어 사상 처음으로 7억3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작년에는 그 폭이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서비스수지 적자 확대는 미국 중국 EU 등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비스수지 적자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과 해외유학 등을 통해 우리 국민들의 마인드가 세계화되고 지식과 외국어 활용 능력이 높아진다면,이는 인적자본 투자의 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환율 하락을 우려하면서,서비스수지 적자 확대를 걱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국제수지 적자는 환율 하락을 막는 데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서비스수지 적자 확대를 걱정하는 이유는 취약한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서비스수지는 대외(對外) 거래국 간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나타낸다. 따라서 최근 서비스수지 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 경쟁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작년 말 재경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했을 때 미국은 242,일본 184 등으로 국내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이나 대외경쟁력의 수준은 국내 제조업은 물론 외국 서비스산업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미흡한 상태다. 그 결과는 국내소비보다 해외소비가 훨씬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5년부터 2006년 3분기까지 국내소비 증가율은 3.0%에 그쳤지만 해외소비는 18.9%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결국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서비스수지 적자 축소와 이에 따른 내수 회복 및 일자리 창출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작년 말 정부는 서비스수지 적자유발의 주원인인 관광 및 교육 분야의 경쟁력 제고 방안을 포함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행 간에 차이(Knowing-Doing Gap)가 크다면 종합대책은 과거의 대책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젠 실행력을 높여야 할 때다. 실행력 평가의 잣대 중 하나는 시장개방과 규제 해소를 통한 경쟁환경의 조성이다. 국내 관광산업의 고비용구조 해소와 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에는 시장개방을 포함한 경쟁 시스템 도입이 효과적일 수 있다.

100가지의 규제 중 99가지 규제를 풀었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단 1개의 규제 때문에 투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규제를 건수가 아니라 패키지로 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